나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시고 뇌병변 장애인이신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간병해 온 지 올해로 18년째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딸인 내게 천하의 원수가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내 친여동생이다. 내 여동생은 매우 평범하다. 대학 졸업 후 독립하여 사회생활 잘했고 얼마 전 독일인에게 시집도 잘 갔다. 지금 아이를 계획 중이고 신혼을 즐기며 즐겁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동생의 이런 평범한 삶이 오히려 우리를 원수로 만들었다고 할까? 아직 우리가 왜 원수가 되었는지 이해가 잘 안 갈 것 같아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그건 바로 ‘가족 간병’이다.
이 키워드를 만약 장애인 환자를 간병하시는 분이 보신다면 척하면 척, 무슨 상황인지 안 봐도 비디오 자동 재생이다. 18년 동안 외롭고 억울한 밤마다 홀로 장애인 보호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알게 되었다. 가족 중 환자가 생기면 간병 때문에 싸우는 건 일종의 의식이라고 해도 될 만큼 꼭 거쳐 가는 것이고, 서로에게 평생 치유되지 못할 굵고 깊은 상흔 몇 개쯤 주욱주욱 남기는 건 식은 죽 먹기란 걸.
아버지의 보호자로 살기 18년 전, 나는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에베레스트 등반, 유럽 여행, 남태평양 바다 서핑 같은 걸 항상 꿈꿔왔다. 이 모든 내 버킷리스트를 18년 동안 동생은 자유의 몸으로 하나하나 이뤄냈고 나는 아버지 간병으로 잠 못 드는 밤마다 그런 동생 SNS를 염탐하며 동생을 원망하는 글을 온라인에 고발하는 은둔형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가 되었다.
자연히 동생과 나는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가 되었다. 동생은 내 카카오톡 차단 리스트에 있었고 가족 모임으로 어쩔 수 없이 어쩌다 한번 만나도,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엮지 않았다. 이런 사이이니 이제 동생은 나 때문에라도 아버지를 보러 집에 올 수 없었고, 아무리 나 때문이라 해도, 집에 아버지를 보러 오지 않는 동생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속은 썩어 갔다. 아버지는 표현이 힘드시니 말씀을 못 하셨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싸울 때마다 항상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찌나 차갑고 단단했는지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도 꽁꽁 얼어붙은 내 미움을 풀어버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우리의 관계를 포기하셨고 조용히 기도만 하실 뿐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것 같았던 어머니가 그날 왜 그 이야기를 내게 조심스럽게 꺼내셨는지 모르겠다. 동생이 곧 독일인 남편과 독일로 완전히 이주하게 될 거란 걸 말이다. 근데 그때 왜 또 그렇게 굳어있던 내 마음도 조금 흔들렸는지도 모르겠다. 방구석 촌뜨기인 내게 독일이 너무 멀게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던데, 아마 그때가 내가 결국 동생과 화해할 때가 되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어머니의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 아무튼 그날 어머니의 그 조심스럽고 소심한 정보에 나는 동생이 떠나기 전, 그리고 아버지께서 인지력이 더 나빠지시기 전에 동생과 화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짧게 훅- 하고 스쳐 지나갔다.
나는 용기를 내어 카카오톡 차단 리스트에 들어가 동생을 차단 해제 했다. 차단 해제하고 발견한 사실은 동생은 나를 차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카카오톡 차단 해제가 바로 선톡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머니가 동생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어머니를 직접 모셔다 드렸다. 그날 나와 동생의 관계를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지, 아무튼 그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 없이 ‘Hi’를 남발하며 나를 무척이나 반겨주는 독일인 매제와 어쩌다 허그도 나누고, 콩글리시 대화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동생과도 한두 마디 주고받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사이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얇은 벽이 존재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 벽은 점차 허물어져 우리는 꽤 자연스럽고 흔한 자매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동생 부부는 다가오는 11월 9일 독일로 떠난다. 솔직히 아직 떠나는 동생이 애틋하다고 할 만큼 동생과의 관계가 완벽히 회복되진 않았다. 다만 언제쯤 다시 함께 맞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 명절에, 연로하시고 점차 인지가 약해져 가시는 아버지와 온 가족이 함께 아버지의 고향 사천에 내려가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이상 별 볼 일 없는 내 원수와의 작별 여행을 계획하며 몇 글자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