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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네이버에 이름 검색을 하면 생기는 일

by 마타이

한때 나는 내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한 적이 있다. 그 무렵엔 인터넷 사용량이 현재에 비해 현저히 적었고,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도 싹트기 전이이라, 일반인의 이름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연줄도 없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종종 그들의 이름을 검색해 그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도움을 줄만한 이는 고등학교 동창회 명부든, 상주/혼주 연락처에서든 항상 이름을 올렸다.


나를 검색하면 구입한 자질구레한 것들, 예약한 펜션 같은 생활정보(?)가 찾아졌다. 하지만 진짜 찾고자 했던 건, 아니 꼭 보이길 원했던 건 내 인터뷰들이다. 내가 한 인터뷰가 아니라, 내가 당한 서면 인터뷰. 직업 때문에 종종, 나 자신의 사상이나 업적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내가 일하는 회사나 프로젝트 때문에, 때로는 인터뷰이가 너무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지인들을 위해 인터뷰에 응했는데, 손사래를 치며 마지못해 돕는 척했지만 사실 나는 인터뷰 요청이 좋다.


특히 어려부터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아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부도가 나서, 커서도 오랫동안 나는 영영 빚쟁이를 피해 다녀야 한다고, 절대 유명한 사람은 될 수 없을 거라고, 내 어중간한 성공은 곧 내 부모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채권자들에게 발각되는 것이라 믿어왔기 때문에, 인터뷰이로 내 이름 석자를 세상에 내미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릅쓰고 했으니 나에게는 여간 달콤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름 석자를 종이(매체)에 새겨 널리 빛내고 알리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뿌리 깊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아이들이 상상력이 뛰어난 것으로 어른들이 생각하던 때, 사실 아이들은 상상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아는 것이 적을 때, 그래서 그 모르는 것들을 아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 표현해야 할 때, 하루 종일 책만 들입다 읽던 책벌레였던 나는 읽고 있던 책을 가는 신음과 한숨 속에 내려놓는다. 읽고 있던 책은 양장본 세계명작시리즈다. 책만 읽었기에 당연히 작가가 되리라 생각했던 어린이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것은 쓸 수 없겠다 생각한 생애 첫 좌절이었다.


태세전환이 빠르고 잔머리가 발달한 이 아이는 바로 눈을 세계명작시리즈에서 위인전 책꽂이로 옮기고, 꿈도 작가에서 '위인'으로 바꾸었다. 당연히 국민학생을 대상으로 써진 위인전의 문체는 소설의 문체보다 쉽게 느껴졌을 것이고, 에피소드 중심의 묘사로 심리에 대한 치밀함이 덜하고 사고 역시 복잡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나폴레옹, 반 고흐, 세종대왕, 안창호, 파스퇴르, 파브르가 생텍쥐페리, 헤르만 헤세,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보다 되기 쉬울 리가. 당시 먼 친척이 세계명작시리즈와 위인전시리즈 외에 다른 책들도 주었다면 내 꿈도 조금은 덜 좌절스러웠을까. 아니면 위대한 작가도 위인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나았을까.


좌절을 벗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꿈이 좌절되었다고 활자와 먼 삶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에 나는 늘 책을 읽었고, 또 늘 활자와 더불어 사는 직업을 생각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팸플릿에 글씨를 새겨 넣는 삶을 살게 되었다. 가끔 아니 자주 남이 준 추접한 주문과 내가 만든 조악한 결과물 사이에서 회의를 느낄 때면, 이게 정말 다행한 삶인지 회의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활자로 맺어진, 평평한 지면에 무게도 없이 살살 내려앉은 듯 새겨진 인연들로 버텨지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지금 이 글은 내 조악한 글을 읽어주며 "계속 쓰기만 하면 된다"고 응원하는 이를 떠올리며 쓰는 글이며, 그가 보내준 다정한 이메일에 소개해준 78년생 여성인 한수희 작가는 어쩐지 나를 닮은 느낌이고, 그의 에세이 <한수희의 인생>을 보다 보니 어쩐지 내 인생도 이야기 하고 싶어 졌고, 그러다 나를 위해서 이 글을 썼으니 조금은 힘을 내서 밥벌이를 위한 쓰기 싫은 글을 쓸 마음도 조금은 생긴다는 거다.


생각이 깨이지 못한 탓에 밥벌이를 하지 못하면 매우 비참하겠지만, 매일, 밥못벌이의 비참을 1/N로 쪼개 먹는 삶은 활자가 없으면, 활자가 준 인연들이 없으면 버티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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