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써야 해?

AOIHOOD EXPERIENCE

by aoihood

aoihood


중학교 1학년은 내가 서툰 솜씨로 글을 쓰게 된 기점이다. 당시 주변 친구들은 나를 문학 소녀라든지, 너는 작가 하면 적성일 애라든지 그럭저럭 말 되는 칭찬을 던져주곤 했다. 가족은 내가 글 솜씨를 위에서부터 물려받았다는 둥, 확실히 감성을 타고났다는 둥 본인으로부터 생겨난 영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게 됐을 거라고 했다. 글을 쓰면 아무래도 진중하고 고상한 사람처럼 보여진다. 그렇겠다. 그렇다기엔 내가 글을 좋아한 건 건강하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늘어놓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중학생부터 다각적이고 복잡한 생각을 일삼았다. 내가 하는 행동은 그런 결과를 초래할 거야, 그렇다면 나는 그 이후로 어떤 대처를 해야 하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무언가 영향을 끼칠 수 있긴 한 거야? 어릴 적부터 나의 알 수 없는 기질에 대한 의구심이 막중해져만 갔다. 좀처럼 무거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나'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가 필요했다. 다른 말로는 사춘기를 겪으며 체화(體化)했던 것을 벗겨낼 취미가 필요했다. 글쓰기란 내게 고상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내가 글을 쓰면 아름답고 좋은 취미를 가진 사람처럼 그려졌다. '작가'라는 것을 장래희망으로 삼았다고 고백했을 때 주변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정도 미화됐다. 사실 그것은 낙관적인 미화가 아니다. 그럴듯한 직업으로, 그럴듯하게 먹고 사는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소신으로 용도 아닌 뱀의 꼬리에서 꽁무니 빠지게 산다는 실재에서 인상깊은 찬사가 오는 것이다.


고등학생까지의 내 장래희망은 문학 작가였다. 통상적으로는 그랬다. 방황하던 몇 년동안 백일장을 나가지도 않고, 입체적으로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데에 힘쓰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 어느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글을 쓰고, 출판을 해 적지 않은 돈을 벌어 기부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슷한 기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관련해 진정한 성취를 이루는 것은 정말 고상하다는 감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처럼 내가 글쓰기를 직업적으로, 죽을 정도로 하고 싶은가를 생각했을 때 그것보다는 나를 제고하는 수단으로 여겨왔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면서 나는 점진적으로 사라지고 새롭게 생겨났다. 부정적인 생각을 늘어놓고 그것에 지배되던 중학생의 나, 그런 지난 과오를 회피하고 취향을 탐색하던 고등학생의 나, 그리고 지금 국문과가 되어 재학중인 내가 있다.


어릴 적의 내가 글을 대하는 태도는 건강하지 않았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 개인적인 결여를 모조리 해소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기에 나는 글을 쓰면서 내게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텍스트화했다. 그리고는 아카이브처럼 늘어놓았다. 그러던 중 어느 기점으로 내 글을 모두 지워버리고 글쓰기를 놓아버리면서 다른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갔다.


나는 어쩌면 신중하고 싶었다. 글을 쓰면 필요 이상으로 솔직해진다. 안 그래도 센서티브한 편인데, 글이라는 취미를 계속하니 몸도 마음도 날카로운 경향이 있었다.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내 시를 보고 표현에 감탄하며 공모전 참여를 물으신 적이 있다. 동시에 간접적인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긍정적인 시가 아니었다. 곧이어 나는 걱정했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는 것이 불안했다. 내가 쓰던 내용들은 낙관적으로 살아갈 길을 제시하는 베스트셀러나, 담담하게 내면의 콤플렉스를 고백하면서 성공한 서적이나, 좋은 기술을 목표하여 연마하게끔 하는 자격증 책이 아니었다. 기이하고 정체가 없는 사랑을 다룬 글이 태반이었다. 당시의 나는 사랑에 대한 글을 악착같이 썼다. 또 좋은 사랑을 하는 방식을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 그런 유독한 기질이 사춘기까지만 지속되고 언젠가는 해소될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도 난 글쓰기를 완전히 내팽개치기 전까지는 사춘기가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글쓰기를 놓아두니 나는 다른 사람이 됐다. 오히려 감정을 토하지 않고 머리 안으로 정리하고 제고하는 습관이 들어서면서 독단적으로 글쓰기를 내쳤다. 나는 그렇다면 여태 모든 글쓰기를 부정적인 것으로 대했던 걸까. 글을 쓰는 경험을 ‘아픈 문학 소녀’, ‘문학인’의 숙명으로 생각했던 건지를 고민했다.


내가 밥을 혼자 먹으니 같이 먹어주는 착한 고양이(kind cat)

대학교 신입생이 되면서 나는 캠퍼스의 다양한 구역을 도전과제 깨듯이 탐험했다. 지금은 신입생이 아니다. 내 학교의 캠퍼스는 꽤나 넓어서 아직까지도 가보지 않은 곳이 많다. 인문대생인 나는 교양 수업이 아니면 거의 한 건물에서 수업을 듣는 편이다. 이 학교의 특별한 점은 고양이가 많다. 어느 날은 혼자 밥을 먹던 중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반대편 의자로 올라와 혼밥이 아니게 됐던 적이 있다. 다른 학우분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와서 웃음이 났다. 고양이에게 음식은 주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아침에 학식을 먹다가 밖이 보이는 투명한 창문 너머로 무언가에 쫓기듯이 네발로 빗발쳐 뛰어가는 고양이를 보고 안타까웠다. 내 상황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생활하며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도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어릴 적의 '혼자'와 성인이 된 지금의 '혼자'라는 의미가 다르다. 점점 내가 나의 길을 메워야 하고,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선명해지고. 그런 깨달음들은 점점 가시적인 수치로 자리하고만 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여태 했던 모든 글쓰기는 나를 의미있게 만들었다. 사실 완전히 의미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내가 의미있는 사람이라고 판가름할 수 있는 건 나에게서만 정의되지 않고, 타인이 나의 능력에서 느끼는 감정에 따라 판단될 때의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을 제외하면, 내가 맨처음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들어준 추상적 존재가 글쓰기였기에 뜻깊었다. 내가 사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을까, 문학이, 삶의 실재가, 글을 쓰면서 흘렸던 눈물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었고 또 다른 하고 싶은 것을 만드는 계기였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막연했던 나를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글쓰기를 향해 힘차게 고맙다고 전한다.


제 글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된 테이블이라 사용감이 있어 다양한 자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