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에서 多를 창조하는 첫 걸음
많은 사람들이 인간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왠지 친해지고 싶고, 왠지 취향을 알고 싶고, 왠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지금 아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
나 또한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내가 보는 그 사람은 밝고 쾌활했으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친구와의 통화에서 햇살이 밝고 따뜻하고 하늘이 예쁜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이라도 용기를 내어 자신 있게 도전하는 사람, 작은 것에도 잘 웃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며 자기 자신도 그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그랬는데 2~3년 동안 그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고 동굴 속에 들어가 버렸다. 자유롭게 날개를 펼치고 에너지를 내뿜던 그 사람은 그 이후로 왠지 매력이 없어졌다.
큰 사랑을 주던 사람에게서 뒤돌아서게 되면 오히려 그 사랑은 아주 큰 미움으로 변하게 된다. 그 사람이 매력이 없다고 느끼고 나니 어쩐 일일까, 그 사람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가 나에게 참 부정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 요새 어떻게 지내? 참 괜찮은 사람이었잖아. 밝고, 쾌활한. 무엇이든 도전하는 사람."
"아니, 그 사람 되게 어둡고 소극적인 사람이던데? 조그마한 일에도 짜증 투성이인 사람.
그리고 그 사람 사회성이 좀 부족한 거 같던데? 친구랑 대화하는 거 보니까 대화 핑퐁이 거의 안 되던걸.
무엇이든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겁도 엄청 많던데?"
동굴 속에 들어간 뒤부터 부쩍 어두워진 그 사람의 미운 점을 하나 하나 뜯어보는 시간. 놀랍게도 그 시간 동안 그 사람의 미운 점들은 화수분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사람의 미운 점 하나를 들춰내면 그 미운 점은 잘린 플라나리아처럼 둘로 늘어나고, 그 둘은 또 넷으로 늘어나고, 넷은 또 여덟로 늘어나고...
그렇게 미운 점이 가득 차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이 검은 점박이를 넘어 검은 하트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3년. 그 2~3년 동안 난 참 많이 그 사람을 괄시하고 싫어했더랬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평가절하한 지 몇 년이 되었을까, 동굴에서 빠져 나온 지는 이미 3년이 되어 가는데 동굴 속에 들어가기 전 나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야 당연하겠지, 내가 이렇게나 '나'를 미워하는데 '나'도 내가 무서워서 고개라도 내밀 수 있었겠어?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내가 동굴 속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자신의 공간에 날 초대하던 친구, 사실 난 그때 그 친구의 공간에 갔다온 뒤에도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너무 많이 발견해서 더욱더 날 미워했더랬다. 이번에도 친구를 만났을 때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이렇게 괄시 받고 있는 '나' 또한 '나'라서, '나'를 불러주는 그 메시지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참 고마웠다.
그래, 한 번 가 보자. 하고 발을 들여놓은 공간. 내가 날 미워할 순간조차 없게끔 즐거운 일들을 잔뜩 벼려놓은 내 친구. 어어?하는 사이 갑작스레 잡힌 부산 여행. 눈 깜짝할 사이 다녀온 여행. 여행을 하며 받은 기운들, 친구의 말, 말, 말.
친구의 말은 사실 같은 얘기를 '가' 형식으로, '나' 형식으로, '다' 형식으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원래 같은 말 반복해서 듣는 걸 너무 싫어하지만, 왜일까? 그 말들은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수렁에 들어가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는 친구의 말, 나처럼 자신을 뜯어보기 시작했다는 말, 전환점, 긍정과 행복의 말, ... 계속 해서 '나'를 미워하는 나를 설득하기에 충분한 사례들, 연구 결과, 산 증인인 너.
친구의 말이 진짜인지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친구는 수렁에 발가락 하나 들인 적 없다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 나는 그저 빛을 좇는 생명체처럼 홀린 듯 친구가 시도했다는 방법들, 친구가 읽었다는 책들을 따라갔다.
나 자신이 '나'를 미워하니, 내가 아닌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비우고, 비우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 받고 싶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나'는 '나'를 예뻐해주지 않는 가장 가혹한 사람한테서 사랑받고 싶어, 바로 나.
그런데 놀라운 일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몇 년간 그렇게 '나'를 괄시하던 마음이 한 순간 사라지고 다시금 '내'가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엔 '나'를 스스로 한 켠에서 어떠하다고 규정하고 사랑했다면 지금은 '나'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어서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있어 진정한 매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매력이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나'는 '나'에 대해 물어보아도 답하지 않는다. 그저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궁금한 게 있어도 즉문즉답이 불가능하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풍부한 경험을 함께 해보아야만 한다. 나에게 사랑이란 뭘까,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쏟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구나, 난 지금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를 알아보고 싶구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지만 이 사랑에 유통기한은 없다. 예측이 가능해질 때 사랑은 식기 시작하는데 '나'는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내가 '나'를 알기 위해 움직이고 노력하면 '나'는 그만큼 나와 친밀해짐과 동시에 변하기 시작할테니까. 변한 '나'를 알기 위해 나는 또 다시 움직이고 노력할테니까.
'나'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도 점 점 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사랑과 '나'와 함께 하는 나날이 기대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