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아웃풋클럽 3회차
요즘 ‘일하는 나’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주 ‘와리가리’ 한다. 와리가리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고민을 자주한다.
A인 것 같아, 아니야 B일 수도? 뭐가 더 나은 선택일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물음이라면 고민이 아닐 것이다. 아쉽게도 무언가를 선택하지 못하는 혼란기를 겪고 있다. 그러다보니 실행도 잘 하지 못 하는 것 같고, 결과적으로는 정체된 기분이 든다.
정체되어 있는 기분은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조급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동안의 경험상 마음이 조급하면 우선 시야가 좁아진다. 그러면 성급한 선택을 하게 되고 이는 후회를 유발한다. 그러면 다시 조급해지면서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나를 정체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와리가리’ 상황은 크게 두 가지이다. 각각의 ‘와리가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조금이라도 격파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와리가리 : 상반기 동안 나는 성장했나?
상반기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뭘 했는지, 정확히 말하자면 잘 성장했는지, 모르겠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건 단지 ‘기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올 1월부터 경험했던 업무들을 한 달 기준으로 정리해 보면 분명 새로운 도전이 많았다. 아주 간략하게만 꼽아도 첫 브랜드캠페인, 외주 프로세스 형성, 동료와 협업하는 방식의 시행착오 등등.
그런데 ‘나 뭐했지?’ 라는 이 막연한 불안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아무래도 ‘끝마무리’ 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실무를 할 땐 언제나 모든 과정이 정신없이 굴러간다. 어떤 프로젝트나 캠페인이 종료 돼도, 내 일의 양은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정신없이 굴러가며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바로 이렇게 일의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며 밀려듦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실제로는 연속적인 일이라도 어떻게든 ‘일시적인 시작과 끝’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시간을 내어서 (1) 덩어리처럼 보이는 커다란 일에서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2) 이 일에서의 배움은 무엇이었는지 (3) 다음에 동일하게 한다면 무엇을 해볼 것인지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적어가며 마음 속에서 마침표를 찍어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 했다.
무력해서 무언가 시도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데(누워서 숏츠나 보고싶으니까), 이 무력함을 떨치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 한다니. 감정에서 기원하는 문제들은 이렇게 모순적인 면이 있어서 쉽게 떨치기 어려운가 보다.
그런데 초조함과 그에 기반하는 두려움을 자주 느끼는 나는 즐거움 또한 쉽게, 잘 느끼는 사람이다. 두 가지 모두 나의 기질이라면, 자주 초조함을 느끼는 것만큼 그것을 더 빠르게 끊어낼 수 있는 나만의 순환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 순환 과정을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일의 마침표 찍을 시간을 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덧붙여, 최근 아주 많이 생각하는 부분은 ‘시간’이 정말 중요한 자원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아~주 많다면 느리게 가도 우짤래미 정신이 발휘 될 텐데 한정된 시간 안에 도달하고 싶은 도착지가 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야 말로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니 어떻게든 잔가지들을 쳐내서, ‘내 시간’을 확보하는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겠다.
왜 그렇게 많은 시간 관리법에 대한 방법론과 글들이 있고, 사람들의 평생 숙제였는지 요즘에야 가슴 깊이 공감한다.
두 번째 와리가리 : 무얼하고 싶은지 잘 몰루?겠다? 아니 알고 있는데 사실 겁이 나는 건가?
첫 번째가 지나간 일을 잘 마무리 하지 못 해서 발생한 ‘와리가리’라면, 두 번째는 앞으로의 방향성이다.
지금까지 세 번의 글을 쓰면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화두는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이다. 동료와 대화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어쩌면 나는 속도가 중요한 사람같다. 그렇다고 방향성 없는 속력을 원하는 건 아니라, 무조건 빨리 하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모순 발생. 속도가 중요한 사람이라면서 방향을 정하지 못 해 정체된 기분이다.
아무 방향으로라도 달려가 보는 게 맞을까? 그러다가 진짜 이상한 곳만 찔러보면? 그것에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지만, 너무 광범위한 것보다는 어느 정도는 나를 위해 선택지를 좁혀주고 싶다.
그런데 더 솔직하자면, ‘진짜’로 선택지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일까?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스스로 좁혀 놨는데 발을 떼기 두려운 걸 수도 있겠다는 게 요즘의 솔직헌 맴이다.
동료들에게 웃짤로 자랑했다가 너무 독기 가득해서 징그럽다는 농담반 진담반 평가를 받은 짤이 있다.
I ♡ 실패
저는 엄청 많이 실패할 거예요. 아주 당돌하게 말했는데 이거는 자기 최면을 위한 말이다.
사실 실패가 너/무/싫/어
다행히 지금 조직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구조가 아니다. 게다가 내 머릿속에 있는 ‘시도’라는 게 갑자기 천 만원이 필요한 프로젝트 또한 아니다. 그런데도 실패하기 싫다…
실패가 싫고, 완벽주의자, 섬세한 사람이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나는 아무래도 쫄보라서 그런 것 같다. 이건 고해성사도, 나의 은밀한 페인포인트도 아니고 나는 그냥 숨길 수 없는 쫄보라서 실패하기 싫더라. 쫄보마저 나의 기질이라면… 요즘엔 이것이 나의 코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앞에서 기질이라는 단어를 한 번 언급했는데, 요즘에 동료를 따라 꽂혀있는 단어이다.
한참 세븐틴을 덕질할 때 '기질과 성향 검사 내용'을 이렇게 오피셜하게 알려준다니? 신이 나서 1년 내내 디깅했는데, 정작 스스로는 잘 돌아보지 못 했다.
뒤늦게 허겁지겁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 쫄보가 나의 기질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라고 학습시키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이에 대한 내용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근본 조언이 있다.
작게 많이 실패해라.
그래서 이미 정해둔 나만의 숙제도 있다. 실수 기록장. 몇 번의 작은 실수를 했는지 적어보기로 했다.
실수가 쌓여서 내 무기가 만들어지는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첫 번째 와리가리에서 정한 해결책처럼 시간을 내어 정리해야겠다.
결론 : 두 가지 와리가리는 모두 나의 막연한 감정에서부터 온다. 이에 대한 해결책
어떻게든 내가 한 일의 끝을 만들어주자. 정리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실패가 두렵다면? 오히려 작게 많이 실패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짤
이 모든 와리가리의 과정들이 나중에 돌이켜 보면 소용돌이처럼 나를 위로 올려주는 시간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