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혐오를 넘어
https://youtu.be/nGvetozzow0
지금이야말로, 이 시대야말로
탈 쓰고 춤춰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이 들다가
한편으로 어느 시대건 그랬겠다 싶다.
웃음으로 눈물 닦던 민초들의 이 놀이는
메말라 가라진 틈 매워 녹이는 단비였을 것이다.
맺힌 한 풀고 아픔 씻기는 성토와 화합의 장 말이다.
1장 청년과 노인 / 양주별산대놀이 제3과장
두 세대는 서로 기대어 산다.
삶은 그렇다. 존재들의 어울림이 삶이다.
자빠질 듯한 서로를 받치며 뒤엉키며
그 덕에 꿈도 꾸며 사는 게 삶이다.
비록 등지고 어긋나 있다 하더라도.
연대의 동아줄은 끊어진 지 오래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
나를 살리시려거든 부디 썩은 동아줄이 아니라
금 동아줄을 내려주시길,
하늘이 내게 금수저의 삶 허락하길,
인간은 더불어 있어 인간이거늘
조각나 불안한 인간은
그저 하늘 향해 자기 욕망만 뿜어댄다.
처절한 절망 역시 애꿎은 하늘에게 쏟아낸다.
허망하고 허망하다.
쪼개진 하늘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분단과 단절이라는 틀과 힘에 뼈 속 깊이 익숙하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을 지탱해 온 공동체성은
희미하고 어렴풋하며 추억하는 관념일 뿐이다.
갖다 댈 이유도 뜻도 망각한 채 자동 대립각,
색깔 입히니 모든 게 빨간색,
너와 나는 이렇게 늘 갈라진다.
길 끊어진 불통시대. 불통 세대.
학벌과 스펙이 존재를 구성한다.
허공으로 뻗어 휘젓는 갈망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존재의 존엄함이
서글프게 어린다.
꺾기고 끼워 맞춰지는 양주 춤사위의 절도가
분절의 현실, 연대의 절박함 오롯이 담았다.
이렇든 저렇든, 마주 보며 돌아라.
어깨 들썩이고 방정맞게 걸으며 서로 바라보아라.
지리하게 반복되는 삶, 여전한 간극 위로
함께 흔드는 춤에 흔들리어 서로 일깨우라.
서로의 몸짓에 웃음보 터트려 혐오의 벽 허물라.
불통의 장막 걷고 고개 내밀어 인사 나누라.
둘은 하나로 수렴되고 응축되어 모두를 껴안으라.
2장 신주부 침놀이 / 양주별산대놀이 제5과장
1장은 구경꾼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베풀었다면
2장에서는 진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탈을 쓰고 맘껏 풀어내는 듯하다.
건물주와 세입자,
회사 고용주와 계약직 직원,
갑부집 어린 딸아이와 운전기사.
이야기 폼새는 다르지만 모두 한 가지,
같은 것을 향한다.
바로 돈이다.
탈춤의 얼, 그 한가운데 해학과 풍자가 있다.
탈을 썼으니 대놓고 꼬지르고 놀리고 까발린다.
옛 시절 탈춤은 과장 나눠서 여러 이야기를 다루었다.
종교의 기만, 권력의 부패, 계급사회의 불평등,
인간의 비윤리, 부도덕성.
삶이 다채로운 만큼 나쁜 짓도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생존, 관계 설정, 권력 구조
모든 것이 자본에 의해(서만) 편성된다.
자본은 실재하는 힘, 살아있는 권력이다.
돈이 존재를 규정하게 된 것이다.
극 만든 이는 이것을 간파한 것일까.
자본의 실체 들추어 주목하게 하고 까는 용기,
그의 탁월함은 여기에 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늘 얹혀있다.
불통은 사회현상일 뿐 아니라 몸의 병증이다.
돈 가진 자 일방적 힘으로
누군가의 밥줄을, 삶 줄을 쥐고 흔든다.
돈은 돈을 낳아 기르고,
가난은 가난을 낳고 기른다.
자본의 자기 증식과 빈곤의 악순환으로
두 세계는 완벽히 갈라지고 길은 사라졌다.
자, 이제 그럼 어떻게 해?
늘 얹혀서 배앓이하며 생기 잃고
타고난 팔자라 원망하며 신세 한탄하고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 자포자기?
암울한 현실, 얹힌 기와 혈 불통의 숨통 뚫고,
갈등과 혐오 찔러 고치는 방법.
침!놀이!
못된 놈들에게 침 한방 씨게 놓고
체증 풀린 모두는 해맑게 어울러 춤춘다.
이 심각한 사태의 해법이 놀이라니.
어울려 추는 춤이라니.
탈춤의 위대함에 내 모든 것이 전율한다.
감출 수 없는 희열이,
가슴 깊이 안도감이,
몸 둘 바 모를 고마움이 희망으로 피어난다.
사진출처 / 극단 연희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