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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니, 네덜란드

by 이나앨

그렇다. 우리 가족이 네덜란드를 떠나 한국에 이사 왔다. 이사 온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간의 시간은, 특히 네덜란드에서 지내던 때는 너무나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너무도 많은 일이 있어서.


이사 오기 전에는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 둘째가 많이 아파 응급실에 입원을 하고, 집을 팔려고 내놓고, 차를 팔고, 짐을 싸 부치고, 호텔과 집을 오가며 가까스로 애들을 재우고, 네덜란드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캐리어 10개, 배낭 2개, 기저귀 가방, 아들 장난감 가방까지 실어 떠났다.

살림살이가 흰 박스에 담겨 컨테이너에 실린다

만 두 살 아들을 위해 이사라는 게 뭔지, 오마와 오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뜻하는 네덜란드 말이다) 정든 친지와 친구, 나무, 집, 장난감에게 어떻게 인사할지 알려주는 것도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그렇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봐도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었까. 너무나 빼곡하게 살아설까. 내겐 기억상실도 아닌데 정말 아무런 색깔도, 글자도, 분위기조차도 없어져버린 시간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이사는 처음이라. 아마 기억이 저 깊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제고 다시 돌아갈 네덜란드라 아주 떠났다는 느낌은 없다.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간 적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잠깐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거쳐가는 적응기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라. 뿌리를 내렸다는 느낌이 없어 네덜란드가 심적으로 멀면서도 가까운지 모른다.


남편과 나는 종종 한국과 네덜란드의 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항상 그렇지만 난 뭐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를 뿐이다. 한국과 네덜란드 사회가 다른 데에 이유와 맥락도 있다.


한국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 떠오르는 네덜란드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그런 게 있다고???)

둘째가 퇴원한 날. 팔려고 내논 네덜란드의 집은 아직 우리에게 “우리집”이다.

행정과 은행 업무가 간단한 편이다. 은행지점은 사라져 갈 정도로 지점에 방문할 일도 없고 은행업무나 행정센터에서 수많은 사인을 할 일도 없디. 전자인증서도 네덜란드는 하나뿐이다. 그것도 쓰임이 제한적이다. 종이도 덜 쓰고 서류도 간소하다.


음식/식재료의 성분 리스트가 짧다. 그릭요거트를 항상 많이 사두는데, 한국에 와서 판매 1위라는 요거트의 전성분을 보니, 우유와 박테리아 외에도 크림, 분유도 들어있다. 냉동 너겟이나 감자도 성분이 2개 혹은 많아야 5개 정도인 게 네덜란드였다. 그리고 닭가슴살이 이미 조리되어 여러 가지 다른 재료와 섞여 가공육으로 팔리지 않는다. 네덜란드 상품들은, 아마 그래서 우리 혀에 닿을 때 맛있다고 느껴지는 짜릿함은 없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뭐가 들어갔는지 모를 합쳐진 재료의 이름을 성분표기로 본 적이 없었다.(예를 들어 기타 과당, 브랜드 이름 00소스 등)


먹을거리 이야기를 조금 더 한다면, 네덜란드에는 씻고 손질된 채소를 싸게 팔아 편리한 점이 있다. 첫째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라즈베리, 딸기를 사계절 내내 싱싱하게 그리고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네덜란드에서 두살 아들과 만든 피자. 도우, 토마토 소스, 딸기, 버섯, 치즈를 따로 사서 뚝딱 만들었었다.

네덜란드 생활에는 여백이 많다. 복잡할 일도, 외식옵션도 없고, 애들 데리고 갈 곳도 너무 제한적이라 그냥 집에 있거나, 근처를 산책하면 하루가 지나갔었는데.

주말에 계획에도 없이 유원지를 가고, 키즈카페를 가고, 키카 옆 샤부샤부 음식점에서 저녁까지 먹은 게 어제다…

어린이집도 하는 게 대부분 자유놀이 밖에 없다. 프로그램에 특별활동까지 있는 한국 어린이집에 비해 아주 “비어있다“.

비온 다음 달팽이 찾는게 놀이였었는데

어찌 보면, 네덜란드에는 규칙이 많아서, 그

규칙만 익히면 편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교차로에서 누가 먼저 나가야 할지 운전할 때 / 걸어갈 때 사방을 살피며 상황을 보지 않아도 된다. 순간순간 해야 하는 판단과 생각이 줄면 스트레스도 적어지는 것 아닐까. 비슷한 맥락에서 교통체증도 그렇다. 차가 쉽게 다니고 길이 덜 막히면 억장 터질 것 같은 (ㅎ) 시간이 줄어든다.

어딜 가든, 무엇이든, 자기 것은 깔끔하게 가꾼다. 중장비는 아들 키우는 엄마들한테 아주 중요한 콘텐츠인데 (ㅋㅋ) 네덜란드에서는 항상 새것처럼 빤짝빤짝하다. 덤프트럭, 포클레인, 지게차 등을 비롯해 오일탱크차, 크레인, 하수구 청소차, 쓰레기차 모두 고속도로건, 동네에서건, 손으로 만져도 될 것처럼 깨끗하다. 집이나 동네에

잡동사니나 광고 포스터도 보기 힘들다. 보도블록이나 도로도 대충 마감한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어 전반적으로 깔끔해 보이는 게 네덜란드 동네들이다 (하지만 비만 내리니 특별히 예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ㅠㅠ 비가 오니 잘 정돈해 두어야지 안 그러면 난리가 날 수도 있겠다).


참. 네덜란드에서 모기 물릴 일은 거의 없다! (가을 모기며 집모기에 아기들이 고생 중이다ㅠ)

계속 한국에서 살면서 네덜란드는 내게 어때질까. 네덜란드 아빠와 가족을 둔 나의 아이들에게는 어떨까.

떠나기 전 첫째가 만든 “우리집”이다.

첫째는 종종 네덜란드를 그리워한다. 비행기 타고 네덜란드에 가자고도 하고, 오마와 오빠가 사는 00 동네에 가자고도, 배편에 부친 초록색 덤프트럭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다고도 한다.

곧 돌아오는 네덜란드의 명절 신터클라스를 지내고, 배편으로 부친 네덜란드 책들과 우리가 쓰던 물건을 마주하면, 감상이 또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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