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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사람들이 치즈 고르는 법

by 이나앨

네덜란드 사람들이 외국에 가면 그리워하는 게 치즈라는데, 한국에 와 매일매일 외식하는 낙에 빠져사는 남편은 아직 치즈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이 없다.


내가 어릴 때 자라며 먹던 치즈는 비닐에 싸여있었고, 젓가락으로 칸을 그려 한 칸씩 떼어먹던 기억이 난다. 요새 슈퍼에 가니 어린이용 치즈도 단계별로 나뉘어 있고 고단백, 저염 치즈 등 종류가 많아졌다. 그런데 성분을 보고 의아해졌다. 짠맛은 훨씬 덜한데, 치즈의 원재료가 치즈라니.

치즈의 원재료는 우유여야 하지 않나?

열심히 그 이유를 찾아보니, 미국식 치즈도 그렇다. 대량생산을 하고 가격을 낮추고 유통기한을 늘리려는 이유란다. 치즈를 재료로 하고 물(정제수)과 여러 가지 첨가제, 색소까지 들어간다. 좋은 점은 낱개 포장되어 간편하다는 건데, 사실 비닐 뜯을 때마다 찢어지고, 비닐을 버려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다. 찌개나 라면에 넣거나 햄버거를 만들 때 패티에 올려 녹이기에는 이런 치즈가 좋기는 하다. 녹인 고무처럼 뭉치지 않고 잘 녹기 때문이다.

치즈에 대해 별 감흥 없이 살기는 하지만, 그래도 첨가제가 좀 덜 들어간 치즈를 가족에게 주고 싶어서, 요새는 구태여 유럽치즈를 사 먹는다.


알버트하인 슈퍼마켓에서 1+1 할인하던 치즈를 매주 사던 건 정말 옛말이다. 치즈를 많이 산만큼, 토스티도 많이 해 먹고 (파니니 기계로 치즈가 들어간 식빵을 눌러서 바삭바삭하게 굽는다 - 버터를 많이 넣으면 더 맛있고, 마요네즈, 케첩, 머스터드를 섞어 소스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계란에 섞어먹고, 빵에 그냥 끼워 먹고 했었는데. 유럽 직수입 치즈 가격도 가격인지라 요새는 치즈가 특식이 되었다. 식단을 바꾸는 건 결국 뭐가 주변에 많은 가다. 할인할 때 너무 많이 사서 냉동실에 슬라이스 치즈를 넣어두고 꺼내먹던 게 네덜란드에서였다면, 이제는 일주일 전에 산 치즈가 아직도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출처: kaas.nl

네덜란드 치즈를 사려고 온라인 검색을 하면 보통 고다치즈, 에담치즈가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십 년 넘게 살면서도 구태여 고다나 에담을 사 먹지는 않았다. 남편도 고다와 에담의 맛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해서 우리는 두 개를 사서 이러쿵저러쿵 맛에 대해 이야기하며 테이스팅도 해봤다.

고다와 에담의 차이점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이렇다. 고다는 크리미 하고 입에서 더 녹는데 그 이유가 우유의 지방을 제거하지 않고 만들어서이고 에담은 스킴드밀크로 만들어 살짝 더 딱딱하고 강한 풍미가 난다. 실제로 느끼기에도 그렇기는 했다. 그런데 이 치즈 이름에 비밀이 있다. 원체 고다 (Gouda, 원어로는 하우다에 가깝다) 치즈는 고다에서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고다에서 팔린 치즈라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슈퍼에서 고다 치즈를 찾으면 고다치즈 안에 또 종류가 많아 헷갈린다. 수많은 치즈 다 고다고 보일 정도다.

고다를 뜯하는 Goudse가 붙은 다양한 치즈등

대중적으로 생각할 때, 네덜란드 사람들의 치즈는 보통 직사각형 모양으로 한 장씩 잘려 있다. 주식인 식빵에 딱 맞는 크기다. 일반 슈퍼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반원형의 커다란 치즈휠을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 팔기도 하지만, 이 직사각형 모양의 치즈 조각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이게 매일 먹기 편하기 때문이다. 한 장씩 빵에 올려먹는 게 점심이니까 말이다. 먹을 때마다 잘라야 하고, 삼각형 모양이면 더 자르기 어렵지 않은가.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들의 직사각형 치즈를 (...) 보통 숙성기간에 맞춰 고른다. 이름 앞에 어느 지역의 브랜드가 붙던지 간에 네덜란드 치즈는 숙성기간에 따라 라벨이 달라진다. 염소치즈처럼 아예 원재료가 다른 게 아니면, 이 숙성기간이 맛을 크게 좌우한다.


Jong (용) 4주 숙성

Jong Belegen (용 벨레흔) 8-10주 숙성

Belegen 18주 숙성

Extra Belegen 7-8개월 숙성

Oud (아우드) 10-12개월 숙성

Overjarig (오버야르) 18개월 이상 숙성


*Jong 젊은 어린 Young

Oud 늙은 오래된 Old

Belegen 성숙 Mature


수분함량이 숙성기간이 오래될수록 없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더 짜다. 나는 주로 용과 아우드 치즈를 샀었는데, 부드럽고 덜 짠 용 치즈는 아이에게 조금씩 주고, 딱딱하고 풍미가 더 강한 아우드 치즈는 남편 몫이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먹은 일반 슬라이스치즈보다 용치즈가 더 짜다. 용 치즈는 색도 더 크림처럼 연하고 아우드 치즈는 주황빛이 난다. 짠맛 외에도 치즈만의 감칠맛이 아우드 치즈가 더 강하다.

오버야르 치즈는 칼로 자르면 툭툭 조각이 나는데, 아마 이 때문일까, 직사각형 슬라이스치즈는 여태 못 봤다. 치즈 전문점에서 조각 치즈를 맛보고 살 수 있는데 처음 먹었을 때 정말 맛있었다. 캐러멜 같고, 말린 과일 맛도 나서 와인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출처: onlinekaasbezord

김치도 숙성시간이 길어지면 맛이 변하고 시어지고 어떻게 먹느냐가 달라지니 (겉절이, 김치, 신김치, 묵은지..), 치즈도 그런가 보다 싶다.


그리고 48+등의 숫자 표기는 지방함량을 뜻한다. 수분을 제외한 재료 중 48%가 지방질이다. 지방이 치즈의 감칠맛과 쫌 쫌 한 맛을 담당하기 때문에 기왕치즈를 먹는다면 이 숫자가 높은 게 맛있다.

염소치즈는 단백질이 더 많고 짠맛이 덜하다. 하지만 염소 우유만의 맛과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가리지 않는다. 종종 네덜란드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식당에서 염소치즈 아이스크림을 맛보기도 했다. 색도 희멀겋고 딱 봐도 덜 짠 느낌이다.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안 먹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쓰기도 가물가물하지만... 조금 더 미네랄 맛이 난다고 해야 할까? 네덜란드의 염소치즈는 프랑스의 크리미 한 염소치즈와는 다르게 보통 슬라이스로 만들어진다. 바케트에 발라 먹기에는 크리미 한 치즈가 어울리고 식빵에 올려먹기에는 좀 단단한 치즈가 편하기 때문이진 않을는지.


부른 (Boeren)은 농부라는 뜻으로 치즈 이름에 Boerenkaas (농부치즈)라는 단어도 종종 보인다. 이건 치즈 전문샵이나 치즈 농장을 가야 볼 수 있는 귀하신 몸이다. 농장에서 직접 기른 소의 우유를 더 많이 사용해서 만드는 치즈이고 방부제가 없어서 유통기한도 더 짧은 편이다. 치즈 맛을 잘 아는 사람은 그 맛의 차이를 알겠지만, 사실 내 입에는 다 비슷하다.

내가 한 때 꽂힌 치즈는 트러플 브리, 트러플 페코리노 치즈이다. 네덜란드 치즈는 아니지만 요일장에 들어서는 치즈가게에서 살 수 있다. 트러플과 치즈를 엄청 좋아하지는 않아도 즐기는데, 그 둘이 합쳐지면 또 바게트가 순삭이다. 색색이 다양한 초록색 바질 치즈, 보라색 라벤더 치즈는 보는 재미가 있지만 보통 슈퍼에서는 잘 안 판다. 향신료인 큐민이 들어가는 큐민치즈도 먹어 볼 만하다.


네덜란드식 치즈로 바꾸면 좋겠는 한국음식도 있다. 바로 치즈 김밥이다. 두툼한 네덜란드 용치즈를 넣으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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