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현지시각 오전 3시 헤이그와 레이든 사이 열차충돌 사건을 통해
어제 (글쓴 기준) 새벽에 내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손에 꼽을 만한 사건사고가 있었다. 새벽 세시 경, 50명에서 60명 남짓하는 열차가 철도에 놓여있던 건설용 크레인을 들이받아 1명이 사망, 3명이 중상, 30명이 경상을 입는, 이곳 기준 "굉장히 큰" 사고였다. 심지어 내가 사는 헤이그와 파트너가 사는 레이든 중간인 Voorschoten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급한 회사일을 보느라 오늘은 아홉 시 반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보통 여덟 시면 레이든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기차로 삼십분만에 통근하는 파트너가 뉴스 링크를 보내며 나에게 소식을 전한 것. 그래서 오래간만에 네덜란드 뉴스를 보다가 "아 이건 네덜란드다운 모습이니 꼭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연구해 보았다.
기사에서 세세하게 설명했던 부분 중 하나는, 중상환자 셋 중 둘은 가까운 레이든 대학 병원, 그리고 한 명은 헤이그 웨스트엔드 병원, 그리고 나머지 경상자는 모두 대형사고 담당처인 유트레흐트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것이다 (경상 피해자들은 모두 오전 열시에 퇴원하고, 대형사고 담당처는 그 후 문을 즉시 닫았다). 나머지 승객은 사고 발생지 새벽에 인근 가정집들에서 식음료를 제공받은 후 즉시 집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 병원에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전문인력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래 이미지 참조). 가족이 간병인, 정보수집 등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픈 것을 크게 티 내지 않고 의료보험 덕에 걱정할 바도 없어서 그런지 철도공사 NS의 사건사고 전담번호로 전화를 거는 사람도 별로 없고, 사건 발생지에서 커피도 제공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등, 다들 <빠르게 귀가>하는 것이 목표였던 듯하다.
2017년쯤, 사촌동생의 친구이며 간호사인 조안나가 (가명) 겪은 이야기를 해보겠다. 휴일에 차를 몰고 가다가 충돌사고를 목격한 조안나는 얼른 차에서 내려 중상을 입은 남자에게 CPR을 실시했는데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실시 가능하다), 그 사람은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결국 사망했다. 2주 후, 조안나의 집으로 <피해자 도움처>에서 파견을 나와 상담을 꼭 받으라고 했지만 그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필요없다고 거절을 했지만...결국 두 달간 상담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곳이 <피해자 도움처 Slachtofferhulp>이다. 이곳은 협박, 절도, 사기, 학대, 성폭력, 스토킹, 그리고 각종 교통사고에 대한 정서적 도움을 주는 전문기관이다. 여러 가지 형태의 도움을 제공하는데 이는 온라인/오프라인 그룹 소통, 형사소송 도움, 그리고 사회기관 및 여러 기관들에게 조언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음 페이지에서는 "소중한 사람이 사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있다. 이번 열차 충돌사건에서도 이 <피해자 도움처>가 나오며, 맞춤 웹사이트가 개설되었다.
우선 아래 NOS 공영방송사 글을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피해자 도움 웹사이트에서 열차사고 관련 정보 및 권고사항 열람 가능>
네덜란드 피해자 도움처에서 Voorschoten (사건 발생지)에서 열차 [충돌]사건 피해자를 위한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주소지는 <포스호튼열차사건.nl>
해당 웹사이트에서는 당시 기차 승객, 사랑하는 이들 [보통 가족, 친구 등을 아우르는 말], 및 기타 관련인들이 피해자 도움처 및 각종 국가기관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한 웹이트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한 번에 열람할 수 있습니다"라고 도움처는 말한다.
"이렇게 큰 일을 당한 많은 사람들은 정서적, 및 신체적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리가 아프거나, 근육이 경직되거나,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거나 괴로운 기억이 날 수 있습니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이런 스트레스성 증상에 대처하는 요령을 담고 있습니다".
꼭 피해자 도움처가 아니라도, 네덜란드에서는 사건사고, 즉 트라우마로 인한 심리상담을 보험처리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암, 파킨슨, 알츠하이머 등 큰 병에 걸린다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심리상담을 받을 것을 권고받으며 이는 무상으로 제공이 된다. 그 외로도 이곳에는 <가족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는 편인데, 예를 들어 <헤이그 파킨슨병 가족과 친구들 모임>에서는 각자의 고충을 나눌 수 있고, 이런 단체들이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당 하나씩 존재한다.
작년 나와 파트너가 이태원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을 두고 오해가 생겼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주의 깊게 보았는데 (이 이야기도 언제 풀어보겠다), 네덜란드와 한국의 사건사고 보도에는 크게 네 가지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비하면 이곳의 뉴스는 심심하지만 간결하고, 감정이 비교적 결여된 느낌이다.
가. (병원에 있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사진을 보도하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법 (Auteurswet)이 철저한 네덜란드에서는 강력범죄자 사진도 (도주범이 아닌 이상) 보도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사고의 사망자가 근무하던 회사에서도 애도 트윗을 썼지만 역시 사진은 없었고, "65세의 남성이며 000주의 XXX시 출신"이라고 지방지가 보도한 것이 최대한의 디테일이었다. 사건 발생 상황을 영상으로 찍으며 다른 승객들을 구한 생존자가 오후에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보도 사진은 기차의 모습을 담았으며, 한 두 장의 사진에 경찰관, 혹은 현장 조사관의 모습이 찍힌 것이 인물사진의 전부다.
나. 사건은 최대한 자세하게 보도하되, 감정이 격앙된 사람들의 말을 가능하면 실지 않는다
감정이 격한 이야기는 여기 사람들 정서에 맞지 않는다. 감정이 격한 사람 말은 일단 안 듣는 편이기에... 앞에서 말한 생존자도 당시 생각을 하면 몸이 떨린다는 말을 하면서도 차분하게 인터뷰를 했다 (혹은 그런 모습만 편집했거나).
다. 관련 국가기관들이 빠르게 성명을 내고, 사건조사에 당일 즉시 착수한다
오전 7시: 마크 루터 총리 트윗 올림
8시: 네덜란드 왕실 트윗 게시
9시, 10시: 기자회견
12시: 국왕 사건 발생지 방문 (총리는 방문하지 않음. 이런 사건에는 주로 왕실이 온다)
오후 2시: 경찰이 현재 3D 카메라로 현장 모습을 저장 중이며, 분석 과정을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고 성명
3시: 피해자 도움처 웹사이트 게시 완료
4시: 중상자들 모두 수술 완료 및 치료 중이라는 소식 알림.
6시: 검찰, 경찰, 및 조사관이 사건 발생지 조사를 완료해야 열차 본체를 수거 가능하다는 소식 전하며 동시에 최소 4월 11일까지는 해당 루트 (헤이그-레이든)는 기차가 다닐 수 없다는 상황 공지
7시: 사건 경과 파악 완료 (1/2차 충돌). 사건의 상세적인 이유 (크레인과 1차 충돌한 화물차 관련 수사)는 조사 중이라는 소식
8시: 충돌사건 사망자가 65세 남성이라는 소식을 출신지역 신문에서 보도
밤 9시: 라이브블로그 마무리
마. 사건의 영향과 추후 일반 시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간결하게 한 기사로 정리해서 전달
피해자 도움처 웹사이트, 담당 철도공사 전화번호 등 피해자와 친지들을 위한 정보가 빠르게 공지되었며, 저녁 6시에 4월 11일까지 헤이그-레이든 사이 열차가 버스로 대체된다는 소식도 전해서 상황이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물론, 네덜란드의 미디어가 한국만큼 광고싸움에 피를 튀기지 않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 BBC같이 공영방송인 NOS에서 모든 소식을 무료로 접할 수도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네덜란드나 한국의 대처, 보도 방식은 문화가 다른만큼 큰 차이가 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보다는, 이런 차이가 있다 정도로 읽어주셨길 바란다.
다만, 내가 네덜란드에서 마음에 들어 하는 하나는 심리치료, 심적 안정이 신체적 건강만큼 존중되고 중요시된다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고 사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네덜란드 대학 생활 중에도 학업 관련 상담을 받았고, 그 후에도 여러 저러 크고 작은 일로 상담을 받았고 주위에서도 다들 쉽게 접해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