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오남매>의 여름 휴가

퇴직일기(9)

by 인문학 이야기꾼

<우리 오남매>는 우리 형제자매 단톡방 이름이다. 성을 따서 ‘박 오남매’, 고향 이름을 따서 ‘흔전 오남매’ 등 여러 이름이 물망에 올랐지만, 친근감이나 하나됨의 이미지가 강한 <우리 오남매>가 최종 낙찰되었다. <우리 오남매>는 큰누나, 둘째누나, 막내누나, 나, 막내남동생 이렇게 다섯 남매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누나가 올해 칠순이니 우리 오남매의 연륜이 만만찮다.

<우리 오남매>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모임을 갖고 있다. 서울에 살다가 은퇴하고 고향 시골에 내려와 사는 큰누나네 집에서도 모임을 하기도 하고, 부산 우리 집에서 모임을 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콘도나 펜션 등을 빌려서 모임을 한다.

내가 정년퇴직한 올해부터는 봄, 가을에 여름휴가까지 하여 1년에 세 번 모임을 하자고 하여 아직 현직에 있는 막냇동생 여름휴가에 맞추어 모임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숙소는 대부분 막내가 책임을 진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에 다니는 막내는 회사에서 사원 복지 차원에서 제공하는 숙소를 알뜰히도 사용한다. 이번에는 ‘팔당생활관-다산관’을 빌렸다.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이 숙소는 과거 직원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펜션 형태로 리모델링하여 직원들에게 빌려주고 있다고 한다. ‘다산관’이란 옥호가 마음에 들었다.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 경기도 광주이니 이 부근일터, 그래서 다산관이라 명명했으리라.


<우리 오남매>는 오남매와 배우자를 더하면 10명이지만 자형(姊兄)들은 모임에서 제외다. 아내와 제수씨는 오남매의 직접 구성원은 아니지만 모임에는 핵심 멤버로 참여한다. 박씨 집안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그런지 누나들이 올케를 핵심 멤버로 정해버렸다. 이번 모임에도 자형들이 참석하지 않은 관계로 경북 예천에 사는 누나들의 교통편이 만만찮다. 막내누나도 서울에 살다가 은퇴하고 시골 고향에 내려와 산다. 막내누나와 자형은 고등학교 캠퍼스 커플이다. 같은 마을은 아니지만 같은 면내에 살기에 큰누나와 막내누나는 점촌이든 상주든 자주 나가 밥도 먹으며 동기간의 정을 나눈다.

경기도 하남 <우리 오남매> 모임 장소로 가는 길에, 자형들도 만나고 누나들도 태울 겸 점촌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은 ‘쭈꾸미볶음’으로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누나와 자형을 만나서 그런지 점심이 특별히 맛이 있었다. ‘만복이 쭈꾸미낙지볶음’이라는 옥호가 정겹게 다가왔다. 처갓집이 점촌이라 이곳을 자주 애용하리라 마음먹었다. 국어사전에는 ‘주꾸미’이지만 옥호에는 ‘쭈쭈미’가 제격이다.

시골에서 재배한 각종 채소를 자형 차에서 내 차로 옮겨 실으니 차 트렁크의 용량이 부족할 지경이다. 채소가 발산하는 고향 향기 맡으며, 누나 둘, 아내, 나 이렇게 넷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하남시 팔당생활관을 향해 갔다. 중부 지방에 폭우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으나 우리가 가는 길은 구름만 낮게 드리워져 있을 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팔당생활관 2층 다산관에 <우리 오남매>가 다 모였다. 막냇동생은 서울에 사는 둘째 누나와 제수씨와 함께 왔는데, 올해 서른 살이 된 조카딸도 함께 왔다. 고모들이 보고 싶어 특별히 휴가를 이 시기에 맞추어 왔다고 했다. 기특했다. 오후 4시였다. 우리가 2박 3일 동안 묵을 이곳 ‘다산관’은 방도 넓고 깨끗할뿐더러 주위의 풍광도 좋아 2박 3일의 일정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번 <우리 오남매의 여름 휴가>는 ‘먹고, 널브러지고, 먹고, 뒹굴고, 먹고, 자고’로 정했다. ‘먹기 휴가’로 명명해 보았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다. 삼겹살, 상추, 깻잎, 풋고추, 마늘 등 시골에서 가져온 채소가 밥상 위에 그득하다. 채소는 고향의 햇살 아래 고향의 흙에서 영양을 듬뿍 받아 싱싱하고 토실토실하다. 지글지글 구워낸 삼겹살을 상추와 깻잎에 놓고 그 위에 밥과 마늘, 풋고추, 김치, 된장을 곁들여 싸서 먹으니 온갖 고향 향기가 몸속에 퍼지는 것 같다. 입으로는 고향 음식을 먹고, 귀로는 누나들이 들려주는 고향 소식을 들으니 저녁 식탁 위에 음식도 고향도 다 있는 듯했다.

저녁을 먹자 큰누나가 신문지를 방바닥에 깐다. 신문지 위에 고향에서 가져온 고구마 줄기를 확 쏟아붓는다. 입으로는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손으로는 고구마 줄기를 까라고 한다. 그 많던 고구마 줄기가 고향의 이야기 속에 파묻혀 금세 속살만 드러낸 고급 요리 재료로 변신했다. 도시에 사는 우리 몫으로 나누어주기 위해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 따로 한 상 차린 식탁 위에 통이 큰 막걸리는 연신 흰 액체를 술잔에 콸콸 토해내고 있었다. 막걸리와 고향 이야기 속에 팔당에서의 첫날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에 된장 끓는 소리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어제저녁의 포만감을 앗아가고 다시 식욕을 자극했다. 고향에서 가져온 쌀은 밥맛의 풍미를 더했다. 갖가지 나물 반찬들은 서로의 자태와 맛을 뽐내면서 식탁 위에 도열해 있었다. 평소에 아침을 안 먹는다던 막내 누나의 수저도 움직임이 분주하다.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니 큰누나가 말린다. 장남은 쉬고 있으란다. 칠순을 넘긴 큰누나는 아직도 장남을 살뜰히 챙긴다. 설거지는 자연스레 서른 살 조카딸이 맡아 했다.

아침 설거지가 끝나자 곧바로 부추전을 부칠 재료를 준비한다. 고향에서 가져온 부추를 씻어 5cm 정도의 길이로 썰고, 풋고추를 썰고, 양파를 썰어서 큰 양푼에 담아 밀가루를 풀어 부추전 재료 준비를 마쳤다. 10시 30분인데 부추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아내는 두 개의 프라이팬을 가동하여 부추전을 부쳐낸다. 부추전 부치기는 주로 아내의 몫이었으나 부쳐낸 부추전을 비워내는 일을 주로 우리 오남매의 몫이었다.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부추전이 아침밥의 소화를 재촉하면서 위장을 다시 채우는 느낌이었다.

부추전이 점심이 될 법한데 점심은 다시 먹어야 한단다. 아내는 오늘 점심 몫으로 쌀국수를 준비해 왔다. 쌀국수는 평소에도 자주 먹는 음식이다. 오이채와 김자반과 들기름과 얼음만 있으면 되기에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다고 하여 특히 여름에 자주 먹는다. 부추전을 먹은 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 쌀국수가 점심 들어간다고 큰소리치며 배를 채운다. 별미라며 다들 쌀국수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다. 먹기 휴가가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점심까지 먹고 나자 아무리 ‘먹기 휴가’라지만 근처 산책이라도 하자고 아내가 제안한다. 너무 더우니, 그리고 언제 기습 폭우를 만날지 모르니 실내 산책을 하자고 막내 누나가 제안한다. ‘스타필드 하남’에 가기로 했다. 가까워 금방 도착했다. 규모와 업종이 어마어마했다. 야외 산책과 달리 여덟 명이 함께 다니기에는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고 무엇보다도 인파가 너무 많았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하고 각자 쇼핑을 하기로 했다. <우리 오남매> 모임의 총무는 막내 누나가 맡아 하고 있다. 임기는 평생이다. 막내 누나와 함께 다니면서 그렇게 넓고 다양한 상품 중에 겨우 둘째 누나의 칠순 축하 케이크 하나 샀을 뿐이다. 다들 아이쇼핑만 하고 다시 만났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으니 오히려 선택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스타필드 하남’에 비해 숙소가 오히려 풍요로웠다. 시골에서 가져온 수박과 참외와 복숭아를 펼쳐 놓았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칠순 축하 노래로 불렀다. 축하금 전달하고 서로 건강하게 살자고 덕담도 건네며 케이크도 먹고 과일도 먹으며 형제의 우애를 다졌다.

저녁에는 돼지고기 두루치가 중심 메뉴다. 큰누나 방식의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맛이 일품이다. 지난해 경북 상주 용추계곡 자연휴양림에서 먹었던 큰누나 표 돼지고기 두루치기의 맛을 잊지 못해 집에서 몇 번 조리를 시도했으나 그런 맛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큰누나의 레시피대로 아내가 조리했다. 나도 조리 과정을 유심히 봤다. 돼지고기를 먼저 따로 삶아 놓는다. 돼지고기가 삶기는 동안 다른 냄비에 대파를 중심으로 양파와 고추를 썰어 넣고, 거기에다 밀가루를 넣고 삶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냄비 속의 채소들이 밀가루와 끈끈하게 버무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대파가 익을 때쯤, 따로 삶아 읽은 돼지고기를 투하하고 각종 양념을 하여 조금 더 가열하니 큰누나 표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완성되었다. 흰쌀밥을 반찬 삼아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먹으니 세상에 이런 맛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밥상을 물리자 막걸리 상이 따로 차려졌다. 남은 두루치기와 복숭아와 막걸리를 앞에 두고 여름휴가의 마지막 밤이 깊도록 고향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아침에는 강된장에 잘 삶긴 호박잎쌈과 양대잎쌈이 올라왔다. 호박잎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양대잎은 경북 북부지방 외에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는 않은 채소이다. 양대잎은 잎이 부드럽고 맨질맨질하여 식감도 좋고 맛도 좋다. 쌀밥과 강된장과 양대잎의 조합은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입맛을 확 돌아오게 만든다. 복숭아를 후식으로 곁들이고 각자 취향에 맞게 커피 한 잔씩 놓고 다음 모임 날짜를 잡았다. 11월 초순 부산에서 모임을 기약하면서 숙소 앞에서 단체 사진 찍었다.

이번 <우리 오남매>의 여름휴가에 가장 애를 쓴 사람은 아내다. 아내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회갑을 넘긴 나이지만 아내에게 시집은 여전히 어려운 듯하다. 그래도 말로는 편하다고 하니 그 마음 씀이 고마울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