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의 여행이 행복하길 바라며
파리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얼마 후. 나는 지인을 만났다. "파리 가서 기차 탈 거라며?"라고 말하던 지인이 가방에서 꺼내 내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자물쇠였다.
"캐리어는 최대한 짐칸 끝에 둬. 그래야 기둥이랑 캐리어를 묶기 편해."
참고로 이 지인은 여행 러버다. 특히 멀리 가는 것을 좋아하는. 웬만한 유럽 국가들을 다 가 본 그녀는 이제는 어느 나라에 가도 물건 안 뺏기고 올 자신이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고 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 처음에 스페인 갔을 때 도둑들한테 내 물건 기부하고 왔잖아..."
그러면서 그녀는 유럽 기차 여행 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차는 최대한 빨리 타는 게 좋다. 그래야 캐리어를 원하는 곳에 둘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중간중간 캐리어가 제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거다 등등.
그녀가 건네준 자물쇠는 자전거용 자물쇠였다. 이런 선물을 받을 줄 몰랐기에, 더 나아가 여행을 간다는 이유로 누군가 선물을 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기에, 나는 웃으며 이 엉뚱하지만 귀여운 자물쇠 선물을 받으며 슬쩍 웃었다. (하지만 이 자물쇠는 파리 여행 내내 호텔 밖을 나간 적이 없다. 나는 TGV를 탈 때 캐리어를 가져가지 않았다. 나는 숄더백과 여행용 짐가방 하나만 챙겨 갔다.)
그리고 작년, 나는 두바이로 또 한번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유럽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그 친구는 호텔에 도착해 캐리어를 풀자마자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짠맛이 강하게 났던 이 과자는 여행 내내 유용히 쓰였다. 나는 꼭 아침을 챙겨 먹는 편이다. 무슨 음식이든 좋으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선 뭐든 먹고 본다. 하지만 매번 호텔의 룸서비스를 시켜 먹을 수는 없는 노릇. 관광을 위한 소소한 에너지 충전용으로 이 과자를 아침마다 먹었다.
그러다 나는 나를 위해 이 과자를 챙겨 왔을 친구에게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어 졌고 마침 마스크팩이 눈에 띄었다. 두바이의 햇빛은 뜨겁기로 유명하다. 관광을 하는 동안 혹사 당할 내 피부를 위해 진정용 마스크팩을 여러 개 챙겨 갔었다.
나는 마스크팩을 친구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가 파리 여행 갔을 때 (유럽의 올리브영이라 불리는) 세포라에서 마스크팩 샀었거든. 근데 그거 너무 독하더라고. 백인 피부는 동양인인 내 피부보다 약하잖아. 아마 이거 쓰면 너도 만족할 거야."
제대로 된 K-뷰티를 처음 경험해 본 그 친구는 여행 내내 내 마스크팩을 탐냈다. (심지어 화장품도 꼭 내 것을 발랐다.) 내가 마스크팩을 하고 있으면 슬쩍 다가오는 그 친구에게 나는 매번 내 것을 기꺼이 나눠 주었다. 심지어 떠나는 날에도 줬다. 기내는 건조하니까.
그로부터 몇 달 뒤, 갑자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 마스크팩 혹시 유럽에서 구할 수 있는 법 알아? 네가 준 거 쓰고 나니까 세포라에서 파는 건 별로라 못 쓰겠어!"
나는 한국 화장품을 살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 친구에게 링크를 보내주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갈 다음 유럽 여행 때, 마스크팩을 두둑이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지인과 친분을 쌓을 때 이 마스크팩이 좋은 연결고리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얼마 전, 친한 대학원 선배의 생일이 있었다.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그간의 안부를 물었는데 그 선배는 얼마 후에 출국 예정이 있다고 했다. 해외의 한 학회에 참석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출국 전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말에 나는 기꺼이 응했다. 만나기로 한 당일. 나는 올리브영을 둘러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며칠 전 생일이었던, 그리고 출국을 앞둔 선배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 게 좋을까.
고민 끝에 고른 건 건강기능식품이었다. 에너지 충전해서 학회 잘 다녀오라는 의미였다. 역시나 마스크팩을 몇 개 더 얹어서 선물 포장해서 주었더니 그 선배는 내 건강까지 생각해 주는 거냐며 유쾌하게 웃었다.
이제 나는 나에게 자물쇠를 준 지인의 마음을 안다. 소중한 사람이 해외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주는 선물은,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꽤 설렌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주기 좋은 선물은 뭐가 있을까. 지인, 가족, 친구의 행복한 여행을 기원하며 선물을 줘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