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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 전, 가장 설렜던 순간 '짐 싸기'

by 이진리

여행의 시작은 준비 단계부터가 아닐까. 비행기 티켓 알아보기, 숙소 알아보기, 여행 코스 짜기, 짐 싸기 등등. 여행의 준비 단계가 꽤 다양하듯, 어디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비행기 티켓 알아보는 단계와 숙소 알아보는 단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것인데 가성비 좋은 경유 티켓을 고를 것인가, 아니면 몸이 편한 직항을 고를 것인가, 이런 고민은 내게 두통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지인 중에는 이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비행 편 검색 결과를 보면서 쉴 새 없이 투덜거리길래(이 가격 괜찮네. 근데 아침 8시 출발이면 도대체 몇 시까지 공항에 가야 한다는 거야? 경유 1회를 하라고? 무려 33시간이나 간다고? 최저가여도 이건 못 가겠다 등등) 나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투덜거림은 그냥 추임새 같은 것일 뿐, 그 사람은 비행 편을 비교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고르는 작업을 오히려 즐긴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짐 싸기다. 반면 나는 짐을 싸는 것을 좋아한다. 텅 빈 캐리어를 양쪽으로 펼치는 그 순간부터가 나에게는 설렘의 시작이다.


나는 짐 싸기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여행 용품들을 전부 꺼낸 다음, 파우치나 압축용 여행 용품 속에 물건들을 하나하나 담기 시작한다. 소분할 수 없는, 크기가 큰 화장품들은 그냥 통째로 넣는다. 그리고 소분한 샴푸나 트리트먼트들을 담는다. 그렇게 되면 파우치 하나가 꽉 차게 되는데 그때부터 나의 즐거움은 시작된다.


화장품 용기들의 사이사이에 나는 무언가를 쏙쏙 집어넣는다. 예를 들어서 인공눈물이라든가, 리무버라든가. 아니면 긴 롤빗을 넣기도 한다. 가끔 용기 사이의 틈을 딱 알맞게 채우는 물건들이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괜히 기분이 좋다.


옷과 신발을 담는 과정 또한 즐겁다. 처음에는 무작정 담는 편이다. 내가 가져가고 싶은 옷들을 전부 캐리어에 담은 다음 압축팩을 닫아 본다. 지퍼는 중간에서 멈춘다. 너무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딱히 실망스럽지는 않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렇게 많은 옷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뺄 시간이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와 타협을 시작한다. 꼭 가져가고 싶은 예쁜 옷들은 어떻게든 사수해야 한다. 게다가 여행지에서 유용하게 휘뚜루마뚜루 입을 만한 옷들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렇게 나에게 몇 개의 조건을 걸어둔 다음, 옷을 하나씩 빼기 시작한다.


특히 옷과 신발 정리를 할 때 즐거운 점은 내가 이 옷을 입고 그 나라에 갔을 때의 모습이 상상된다는 점이다. 약간 도톰한 니트 재질의 반팔 원피스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으면 잘 어울리겠지. 이렇게 차려입고 유럽의 거리를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빵집이 보이면 고민 없이 들어가야지. 그리고 꼭 크루아상을 먹어야지.


물론 이러한 상상회로의 단점도 있다. 내가 가고 싶은 모든 곳을, 다른 옷을 입고서 가고 싶어 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뺄 게 없어진다. 이때 다시금 나에게 '타협'이라는 주문을 걸어야 한다. 이틀 정도는 똑같은 옷 입어도 상관없잖아?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옷 빼기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당연히 신발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많이 돌아다녀야 하니 운동화는 필수. 하지만 이것 하나면 될까? 혹시나 차려입어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 생각하며 챙겨보는 플랫 슈즈.


신발들은 전부 부직포로 된 여행용 신발 케이스에 담긴다. 신발은 부피를 줄이는 게 불가능하다. 그때부터 이제 테트리스가 시작된다. 이미 넣어둔 물건과 물건 틈새에 새로운 물건을 채워 넣는. 이때 그 틈새가 딱 메워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온몸에 희열이 돈다.


짐 싸기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캐리어가 닫히는지까지 확인하는 게 짐 싸기의 여정이다. 처음에 닫히는 경우는 별로 없기에, 캐리어를 다시 펼치고서 나는 또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캐리어 지퍼가 완전히 바로 그 순간이 주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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