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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도 썩 괜찮은 파리라는 곳

by 이진리

나는 지금까지 총 세 번의 해외여행을 해봤다. 미국, 프랑스 그리고 두바이.


미국은 가족 행사 때문에 갔다.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큰 경사 중 하나인 결혼이라는 행사에 초대받은 것이다. 물론 나만 초대받은 건 아니었기에, 나를 포함한 총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이라는 큰 땅을 밟긴 했지만 사실 그때의 기억은 좀 희미하다. 내가 간 곳은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내가 묵었던 호텔 근처에서 가장 큰 건물이 마트였을 정도로 그저 고즈넉하기만 한 그 도시에서,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나는 결혼식 준비를 돕느라 바빴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인 앤 아웃 버거가 꽤 맛있었다는 것뿐이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해외는 두바이다. 사막 투어를 하며 낙타 타기 체험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론 아부다비에서 갔던 그랜드 모스크, 두바이에서 갔던 부르즈 칼리파의 풍경도 아직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늘 한 사람이 끼어 있다. 함께 갔던 친구의 모습이다.


두바이에는 해외 생활을 오래 한 친구 한 명과 함께 갔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면 꽤 편한 점이 많다. 룸 서비스를 시킬 때, 길을 잃었을 때 등등.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생겼을 때마다 나는 친구를 출동시켰다.


친구는 군말 없이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왜냐하면 그 여행은 친구가 나를 조르고 졸라 간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두바이 얘기를 꺼냈을 당시는 나는 파리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시기였다. 여행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고 심지어 두바이는 내가 손꼽아 가고 싶은 나라도 아니었었다. 하지만 학업에 지친 대학원생의 처절한 부탁은 몇 년 전 나의 대학원생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잠시나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너무 잘 알겠어서 친구의 부탁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었다.


여행 내내 우리는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순조로웠던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오히려 선명해진 건 파리의 풍경이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파리의 거리를 거닐던, 홀로 가는 여행의 매력이 새삼 그리워졌다.


파리라는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파리의 치안은 나쁘기로 소문이 자자하니 신경을 곤두세우자는 생각은 종종 했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조식 먹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호텔 조식을 먹고 느릿느릿 머리를 말리고 느릿느릿 짐을 챙겨 우버를 부르고, 내가 예약한 시간에 맞춰 내가 가고 싶은 미술관에 갔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특히 오래 머물렀다. 한 시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사전 조사 없이 갔던 오르세 미술관은 내 예상보다 훨씬 컸고 0층부터 5층까지 있었던 오르세 미술관을 흠뻑 즐기려 나는 그곳에 거의 세 시간 이상을 머물렀다.


KakaoTalk_20250318_185531875.jpg 그림 설명을 듣고 있는 (아마도) 프랑스 꼬마 아이들


그림들을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특히 귀에 꽂히는 이국적인 언어들을 감상하는 것도 내가 오르세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미술관을 관람하는 데 써야 했지만 괜찮았다. 나는 혼자니까. 어디에, 얼마나 머무를지는 내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오르세 미술관을 나왔더니 바로 앞에 센강이 보였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날씨는 맑아서 모든 풍경들이 다 생생히 보였다. 여기까지 올 때는 우버를 탔지만 돌아갈 때는 내 두 다리를 쓰리고 했다. 산책로처럼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러갔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 혼자여서 괜찮았다.


먼 곳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온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여행이 힘들지는 않았냐고. 나는 늘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답할 것이다. 어떻게 계획을 세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답한다.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괜찮아.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좀 쉬었다가 가면 되고 신기한 게 눈에 보이면 그냥 잠깐 멈추면 된다고.


여러 가지를 둘러보고 왔던 두바이 여행은 나에게 '관광'으로 기억되지만 홀로 누리고 왔던 파리는 '경험'으로 로 기억되는 중이다. 앞으로도 나는 자주 경험을 할 것이다.




KakaoTalk_20250318_185532316.jpg 길을 걷다 발걸음이 멈췄던 파리의 어느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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