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파리 여행 중 내가 발견한 새로운 나는 '뻔뻔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오르세 미술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오르세 미술관 입장권을 미리 예매하긴 했지만 오르세 미술관이 어떤 미술관인지, 대표적인 작품에는 어떻게 있는지 등등. 사전 조사는 하나도 하지 않았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드디어 파리에 간다는 생각에 들뜬 나머지, 그리고 오랜만에 온 공항이 너무 신기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만 찍었다.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며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괜찮아. 파리에 가서 알아봐도 늦지 않을 거야. 예약해 둔 날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 마주한 불면이라는 불청객의 강력한 펀치 때문에 나는 파리에 도착하고 얼마간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렇게 나는 결국 아무런 정보 없이 오르세 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간 것은 나에게 오히려 좋았다. 전시된 그림의 수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는 긍정적인 충격 때문이었다. 통로 곳곳에 위치한 조형물들도 내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미리 알고 갔다면 시간을 경제적이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겠지만 나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었고, 일상의 잠시 휴식을 주는 '여행'이라는 것을 갔을 을만큼 내게 있어 남는 건 시간이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은 이런 류의 그림들이다. 사진으로 보면 그다지 커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의 그림은 정말로 크다. 나는 그림의 붓칠 디테일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 큰 그림의 곳곳을 다 살펴보려면 한참을 이 그림 앞에 머물러야 한다. 한 가지 그림을 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 또 그 그림을 유심히 보는 식. 그림에 대해 조예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방식대로 그림을 즐기고 있던 중,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림에서 다른 그림으로 옮겨 갈 때마다 자주 마주치는 한 사람. 배낭용 여행을 메고 있는. 다소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는 딱 봐도 동양인은 아닌 사람. 아, 나와 그림 보는 취향이 비슷한 누군가가 또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그림 보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아뿔싸, 슬슬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고 한참 서 있고를 반복하다 보니 다리에 과부하가 온 것이다. 다행히 오르세 미술관에는 관람객의 고단함을 덜어줄 수 있는 의자들이 많았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 앉아 눈에 닿는 곳에 위치한 조각 작품들을 자세히 뜯어 보고 있는데 내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어딘가 익숙한 신발. 얼굴을 보니 나와 그림 취향이 겹쳤던 그 사람이다.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타이밍으로 다리가 아파서 쉬러 왔나. 그때 내 머릿속에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한테 말을 한번 걸어볼까?'
나와 같은 관광객 입장이라면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며 말 몇 마디를 나눠볼 수도 있을 테고 만약 프랑스 사람이라면 관광객은 잘 모르는 유명한 빵집을 추천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어떻게 말을 걸어볼까. 마음속으로 혼자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는 동안 그 관광객은 먼저 유유히 떠나갔다.
비어 버린 옆 자리를 응시하며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나는 만인이 인정하는 내향인이다. 부끄러움도 쑥스러움 많은 걸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다. 그런 내가 먼저 말을 걸 생각을 하다니. 영어가 그리 유창한 것도 아닌데.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진짜 말을 걸진 못 했지만 다음 여행 때, 만약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면 나는 기꺼이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 것이다.
이때 내가 장착해야 할 것은 당당함이 아니라 뻔뻔함이다. 내가 생각하는 당당함은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 있어 자신감을 장착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류의 감정이라면 뻔뻔함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내가 아무리 낯설어도 그것을 끌고 나가는 힘이다.
얼마 전, 비행기 티켓을 샀다. 이제부터 뻔뻔함을 연습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