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리와 두바이, 과연 나의 취향은?

by 이진리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겨울을 남들보다 일찍 오는 계절이자 남들보다 나에게 오래 머무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제 따뜻해지겠구나 싶을 때쯤 다시 비가 내리고 찬바람을 몰고 오는, 본격적인 봄이 오기 전 날씨가 부리는 특유의 변덕을 보며 나는 옷장 앞에서 자주 서성인다. 이제 슬슬 겨울옷을 정리해도 되나 싶어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나는 가장 먼저 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산책이다. 원래부터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특히 낮에 하는 산책을 좋아한다. 나는 나만의 산책 루트가 있는데 이 산책 루트를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감질나게 느껴질 때면 나는 조금 더 걷는다. 가끔은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을 때도 있다.


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두 다리로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듯 나도 그러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럽 특유의 낮고 다다다닥 붙어 있는, 옛 시간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건물들을 눈에 담는 것을 좋아하기에 나는 파리 여행 중 하루에 최소 1만 보 정도를 걸었다. 그리고 걸어 다녔던 보았던 파리의 풍경은 꽤 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파리에 다녀오고 나서 얼마 후에 나는 두바이로 여행을 또 한 번 떠났는데 그때도 참 많이 걸었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유럽에서의 걷기가 산뜻함에 가까웠다면 두바이에서의 걷기는 길을 찾으러 헤매는 여정에 조금 더 가까웠다.


아부다비의 유명 관광지 그랜드 모스크 사원, 두바이 시티의 대표적 관광지 두바이몰 등을 가기 위해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동안 중간중간 이국적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아주 흰 건물들. 혹은 살짝 노란끼가 도는 건물들. 거리를 헤매는 아주 마른 고양이들 등등. 하지만 뭐랄까. 두바이와 아부다비의 풍경들은 약간 너무 광활했달까.


KakaoTalk_20250418_152517684.jpg 비어 있던 곳이 많았던 두바이와 아부다비

고로 나의 그때 내 '걷기'의 목적은 이국적 풍경을 누비는 걷기가 아니었고 목적지로 가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두바이를 인생 여행지로 뽑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 감정은 개인적인 감상이며 취향에 에 가깝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금 시점에서 두바이 여행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막에서 낙타를 탔던 것이었다. 한국에는 사막이 없다. 하지만 두바이에는 있다. 현대화된 건물들이 많은 한국에는 고층 빌딩이 많다. 하지만 유럽에는 (물론 고층 빌딩이 있는 유럽의 도시도 있지만) 낮은 건물들이 많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눈으로 보거나 몸으로 체험할 때 즐거워하는 것 같다.


나는 얼마 전,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갑자기 일이 몰아치거나, 내 마음의 변화가 생기거나, 혹은 항공사에 사정이 생기거나. 이러한 이유가 아니라면 나는 6월 말에 유럽에 있을 예정이다.


이번 유럽 때도 역시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볼 생각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를 가든 내가 많이 걸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도, 또 프라하에서도 많이 걸어야 할 테니 지금부터 다리를 튼튼히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다리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취미 발레를 하는 사람인데, 어제는 발레리나 선생님에게 햄스트링 힘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씨가 얼른 더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 더 가벼운 옷을 입고 조금 더 가볍게 걸을 수 있으니까. 어제 즐긴 발레 레슨 덕에 앞 허벅지에 근육통이 꽤 심하지만 그래도 나는 방금 전 한 시간가량을 걷다 왔다. 아마 내일도 내일모레도 똑같지 않을까.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나만의 산책 루트를 걸으며 나는 6월을 기다릴 것이다.



KakaoTalk_20250418_152455726.jpg 그래도 아부다비에서 본 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필 지금 여행을 가고 싶을 게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