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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전과 후, 내가 알게 된 점

by 이진리

빠른 결론은 진리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관습에 더 많이 기대 있다. 자주 쓰이는 만큼 그게 '정말'인 것 같은 그럴듯함이 묻어나 있다. (예를 들어 야, 세상 사는 건 원래 힘든 거야) 그렇기에 관습에 기댄 빠른 결론은 가끔 재미가 없다. 삶의 대부분이 재미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재미만을 추구해야 할 때가 있는 법 아닌가.


나는 나의 취향을 속단하려 하지 않는 방법으로 종종 재미를 찾는다. 마라탕이 한창 유행할 시절, 나는 마라탕을 한 입 먹었다가 금방 실망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중국 음식점에 가게 되었다. 친구는 마라샹궈를 주문했는데, 한 입 먹어보라는 친구의 제안에 나는 선뜻 마라샹궈에 손을 뻗었다.


그때 처음 맛본 마라샹궈는 생각보다 아주 맛있었다. 마라탕을 먹고 실망한 적이 있으니 '나는 마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살았다면 친구가 권한 마라샹궈를 정중히 거절했을 것이고, 아마 지금까지 마라샹궈라는 음식의 매력을 모르는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빠르지 않게 결론을 내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 중 하나는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소위 말해 '늦바람'난 초보 여행자가 된 내게 여행은 내가 모르던 나를 발굴해 주고 있다. 요즘 내가 느끼는 점은 이러하다.





- 나는 고르는 것을 지겨워한다

-> 현재 내 비행기 티켓은 독일 인아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잠깐만 머물 뿐, 동유럽에 쪽에 더 오래 머물며 동유럽 특유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실컷 보고 올 예정이었다. 유명한 동유럽 코스는 프라하, 오스트리아, 부다페스트다. 마음 같아서는 저 세 곳을 다 다녀오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기차에서만 약 10시간 이상을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둔 덕에 비행기 티켓을 변경하는 건 어려운 상황이다. 욕심을 내서 프랑크푸르트-프라하-부다페스트 순서대로 들렀다 올 수는 있겠지만 캐리어를 끌고 기차에 타고 다시 내려서 이국의 거리를 걸어 호텔을 찾아가고. 이 과정이 굉장히 고될 것 같지만... 나는 기차 여행을 좋아하니 또 못할 것도 아닌 것 같고.


온갖 생각이 스치는 이 상황이 퍽 고민스럽다. 프랑스는 파리, 영국은 런던. 독일은 이런 식으로 여행객들이 자주 가는 거점이 있는 도시가 아니어서 더더욱.



- 내가 여행 시 고려하지 않는 것 = 음식

-> 작년 9월, 미식의 나라 중 하나라고 불리는 프랑스에 다녀왔다. 구글맵을 뒤져보면 동양인에게도 친절한 별 5점짜리 식당을 금방 찾을 수 있을 테고 한국인에게는 '네이버 블로그'라는 어마어마한 정보의 보고가 있으니, 검색 몇 번이면 금방 질 좋은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동안 길을 찾으려 구글 맵을 자주 보긴 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식당' 카테고리를 눌러본 적도 없다. 여행 시 내가 가장 고려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글의 초반에 나는 '빠른 결론은 재미가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속단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인 과거의 데이터가 알려주는 확실한 결론이다.


나에게 있어 음식은 유희의 과정이 아니다. 생명 연장의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곳의 음식이 내 입맛에 안 맞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음식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자취 후에는 더욱 무관심해진 현재의 식습관이 여행지까지 이어질 뿐이다.


독일에 가서는 소시지를 꼭 먹어야 한다던데. 소시지 맛집이 또 따로 있다던데...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들어가고 싶은 식당이 우연찮게 소시지 맛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물론 그곳이 소시지 맛집이 아니어도 좋다. 분위기만 좋다면.


(혹시 나처럼 여행 중 음식을 그리 중요치 않게 여기는 사람은 또 없는 걸까. 여행 후기를 보면 맛집 후기가 빠지지 않는 걸 보며 문득 궁금해졌고 지금도 그렇다. 혹시 나랑 비슷하신 분이 있을까.)





음식에 관해서는 몇 년 동안 쌓인 데이터를 모아 '별로 중요치 않다'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아직 내 여행 스타일에 대해서는 속단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재미없는 나라라고 소문난 독일에 대해 '노잼' 도장을 찍지 않을 것. 동유럽을 어느 정도까지 보고 올지, 지금은 헷갈리지만 너무 빠르게 결론 내리지 않기.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내 마음을 잘 살피기.


어디에서 며칠을 묵을지가 걱정이지, 사실 그 외의 것들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어차피 음식에는 관심이 없으니 굳이 식당 고르는 수고는 안 해도 된다. 게다가 유럽은 어딜 가든 이국적이고 내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널려 있기에 나는 그 풍경에 흠뻑 젖은 후 귀국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여행지를 찾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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