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합리적인 가격에 잘 끊어두기는 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은 비행기 예약이 전부다. 호텔 예약도 해야 하고 기차를 타고 국경을 한 번 넘을 예정이니 기차표도 사야 한다. 유럽의 기차표는 한국의 기차표와 달리 요일이 가까워질수록 비싸진다. 여행이 두 달 남짓 남은 이 시점에 사두는 게 가장 베스트라는 걸 알지만 자꾸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는 '그래서 이번 여행 때는 어디까지 가봐야 하는 거지?'라는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다.
원래 나의 계획은 '프랑크푸르트-뮌헨-프라하'였다. 뮌헨에 대해서는 전에 알아본 바가 있기에 이번에는 프라하를 위주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프라하'라는 검색어에는 '세미 동유럽 패키지'가 짝꿍처럼 달라붙어있다. 참 많은 유럽 여행자들이 동유럽을 패키지로 이동하며 체코(프라하)-오스트리아-헝가리(부다페스트)를 다녀왔고 그 후기를 써두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블로거들은 사진을 참 잘 찍는다. 사진으로만 봐도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참 황홀하다. 이걸 내 눈으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스트리아는 정말 클래식한 예술 도시다운 면이 돋보이는 도시다. 나는 박물관, 미술관 가는 걸 특히 좋아하는데 아름다운 클래식한 예술품들이 많은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보면 내게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여행 일정에 오스트리아와 부다페스트를 끼워 넣어볼까? 뮌헨을 포함, 동유럽 유명 국가들도 다 둘러볼 수 있는 일정을 짜달라고 챗gpt에게 부탁해 보았다. 챗gpt가 짜준 여행 계획에 따르면, 나는 각 나라에 최대 1박 2일만 머무를 수 있었다. 한 나라의 한 도시를 구석구석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계획은 절대 1순위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챗gpt에게 여러 여행 케이스를 제시하고 (예를 들어 뮌헨-프라하-오스트리아, 프랑크푸르트-프라하-부다페스트 등등) 이동 수단과 그 도시에서 꼭 가봐야 하는 스팟 포인트에 대해 물었다.
정말 다양한 선택지들을 고려하고 있지만, 나는 이 글의 시작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예약을 못하고 있다'로 시작했으니 그 말은 곳 아직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선택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라라 한두 시간쯤이면 국경을 넘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를 가려면 기차 및 버스를 타고 약 일곱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아마 동유럽 3개국을 다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이때 드는 '아쉽다'는 감정이 뻗어나가는 쪽은 나의 과거다.
만약 20대에 내가 동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현재의 내가 차마 고려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을 것이다. 야간 버스는 말 그대로 밤에 이동하는 버스인데 약 여덟 시간 정도를 소요해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 넘어갈 수 있다. 아무리 야간 버스의 자리가 넉넉하다 해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만큼 편하겠는가. 그렇지만 밤을 새우며 과제를 하고도 비교적 멀쩡한 정신으로 곧바로 수업을 들으러 갔던 대학생 때의 내 체력이 있었다면 이 정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20대 초반을 그렇게 그리워하지 않는다. 20대 초반부터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게 불안이고 불안은 불면을 생산했으니까. 차라리 20대 후반이 더 그립다. 대학원을 다니던 그때. 적당한 체력과 적당한 불안을 굴리며 살던 그때가 훨씬 좋다. 그리고 그때 나는 드디어 집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체력이 가득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고생이 아닌 슬픔이라는 서글픈 고생만 했다는 게 아쉽지만 나는 더 이상 옛날을 곱씹으며 살고 싶지 않다. 그때 못한 것들을 내게 해주며 조금씩 행복해지고 싶을 뿐. 그런 의지를 30대에 다지게 되었고, 나는 나에게 유럽여행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지금이 어쩌면 가장 좋은 날 아니겠는가. 어쨌든 내 유럽 여행은 성공적일 거고 나는 이곳에 잔뜩 후기를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