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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비즈니스라는 마법은 과연 일어날 것인가

by 이진리

내 인생 두 번째 유럽 여행이 어느덧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 가서 어떤 것을 보고 올지 대충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독일에서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넘어간 간 프라하는 꽤나 예쁠 것이다. 동유럽은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있다고 하던데, 그걸 눈으로 보고 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이번 유럽 여행이 기대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내가 비즈니스 좌석을 예매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비즈니스 좌석은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저가 항공사의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독일로 갈 생각이다. 저가 항공사의 프로모션 기간에 맞춰 발급된 쿠폰을 싹싹 긁어모아, 꽤 괜찮은 가격대로 비행기 표를 구한 건 꽤나 행운이었다. 덕분에 유럽 출국길만큼은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은혜는 출국길에만 해당된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입국 비행기는 이코노미 좌석으로 끊어두었다.


작년에 갔던 나의 첫 유럽 여행지 파리. 온통 아름다웠던 파리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의 분위기, 테라스에 앉아 친구들끼리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이국의 사람들까지.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해서 보고 겪은 일들이 좋았을 뿐 파리까지 가는 길은 그렇게 아름답지도, 쾌적하지도 않았다. 비행기에서 도진 불면증 때문에 나는 비행기 안에서 서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왜 나를 혹사시키냐고, 당장 나를 재워달라고, 온몸에서 이는 경련과 함께 찾아온 불안함 때문에 비행기에서 찔찔 울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호텔로 가는 택시에 타자마자 뒷자리에서 뻗어버렸지만 그 와중에도 걱정이 됐었다. 이곳은 이국이다. 혹시 우버 기사가 길을 잘못 들면 어쩌지. 호텔까지 무사히 잘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그나마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택시에서도 못 잤다.


초주검이 되었던 그 경험은 아직도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2025년 4월 기준, 이 말도 안 되는 환율을 알면서도, 현지에서 통장이 텅장이 되는 마법을 경험할 걸 알면서도 비즈니스 좌석을 예매했다. 마음 같아서는 왕복으로 비즈니스 좌석을 끊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통장이 정말 제대로 텅장이 될 것 같아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비행기가 뜬 이상 나는 여기에 몸을 싣고 인천까지 가야 하고, 쓰러져도 인천에서 쓰러져야 누군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주지 않을까. 내 인적 사항이 보험이 되어주는 나라인 인천에서 쓰러지는 게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쓰러지는 것보다 무조건 더 나을 테니.


하지만 비즈니스 좌석이 아주 드라마틱한 마법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이륙 후 나온 첫 번째 기내식을 모두 먹은 후 만들어지는 인공적인 밤에 내가 곧바로 잠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참고로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식사를 마친 후 수면제를 복용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면'에 대한 기대는 없다.


나는 이번 비행 때 귀마개를 가지고 갈 생각인데, 귀마개를 끼고 있다 해도 완벽한 소음 차단은 안 될 것이다. 아무리 180도 누워 갈 수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다 해도 비행기는 내게 있어 낯선 곳이다. 만약 내가 어딜 가든 잘 적응하고,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면 나는 불면증 환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잠을 잘 때 있어 소음, 불빛의 조도 같은, 외부 자극에 엄청나게 예민한 편이니까.


그래서 내가 타협한 선은 4시간 정도의 선잠이다. 그래도 그 정도만 자도 아예 못 잔 것보다는 컨디션이 훨씬 나을 것이다. 만약 4시간 이상의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동시에 살짝 걱정스럽기도 하다. 비즈니스가 부린 마법을 한 번 맛보고 나면 앞으로 비즈니스 좌석이 아니면 여행을 못 다니게 될 것 같아서...!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사실 그냥 잘 잤으면 좋겠다. 비즈니즈가 내게 마법을 부려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고 불면증 환자가 떠나는 비즈니스 이용 후기 또한 꼭 이곳에 남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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