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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남은 어쩌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일 지도 몰라

불면증 환자 행동 지침, 섣불리 약속을 잡지 말 것.

by 이진리

햇수로 3년째 불면증 약을 먹고 있다. 나를 망치러 왔지만 동시에 구원자인 약과 고군분투하는 동안 나는 수면 패턴이라는 걸 갖게 되었다. 약은 10시 이내에 먹을 것. 약을 먹은 후에는 운동은 금지. 유튜브 시청 또한 최대한 자제하기. (일부러 '자제'라는 표현을 썼다. 아예 안 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지만 유튜브의 중독성은 어마어마하니까. 밤 10시 이후의 유튜브 시청은 내게 있어 일종의 길티 플레저다.)


어제는 유효했던 나만의 바이블이 오늘도 통할 지는 미지수다. 나만의 지침을 따른 덕에 숙면하는 날도 있지만 아닌 날도 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날. 몸이 뻐근하고 눈이 건조한 그런 날. 지금 당장 휴식을 달라고 몸이 소리치는 와중에도 나는 잠을 잘 수 없지만 (나는 낮잠을 자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모든 종류의 잠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지'라며 위안을 삼는 편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예전'은 정신과 약을 먹기 전이다. 약 2년 정도 나는 '불면 부정기'를 겪었다. 여기서 '불면 부정기'란 잠드는 데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지만 정신과라는 문턱이 너무 크고 높게 느껴져 혼자 끙끙대며 앓았던 시기를 뜻한다.


나는 이 '불면 부정기'를 빨리 벗어나지 못한 걸 아직도 후회 중이다. 이때 내가 잃은 게 꽤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체력이다. 어쨌든 우리 몸은 수면을 필요로 하기에, 거의 기절하듯 쓰러져 잠깐의 선잠을 자고 일어나곤 했는데 그 상태로 2년을 버티는 동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지금이라도 체력을 늘려보려 적어도 3일에 1번은 운동을 하는 중이지만 인간의 몸은 충전기 꽂는다고 살아나는 휴대폰이 아니다.


그리고 이 '불면 부정기' 동안에는 원활한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오늘의 내가 잠을 잘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는데 내일의 나를 어떻게 예상하겠는가. '불면증 때문에'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었지만 그때에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물론, 변명을 하기 싫어진 어느 순간부터 '내가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내일의 컨디션이 모르겠어. 혹시 내일 돼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얘기해 줘도 괜찮을까?'라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침대에 산송장처럼 누워 있는 너무 길어졌을 때쯤 그래도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웹소설 작가 모임을 나가 보기도 했지만 나는 이 선택 또한 후회한다. 충분한 휴식이 공급되지 않은 뇌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사람들의 대화를 따라가려 노력해 봤지만 자꾸 흐름을 놓쳤고, 말 없는 사람을 챙기고자 하는 책임감 강한 몇몇 사람들의 질문에만 네/아니오 정도로만 대답하는 내가 싫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내가 커다란 돌멩이 같다는 생각에 빠지는 건 어떤 방면으로 생각해 봐도 건강한 생각이 아니다. 나만 빠지면 더욱 화기애애해질 자리를 빠져나오며 불면증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 또한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지금 이 순간도 밤을 버티고 있을 누군가에게. 불면을 싶지 않아 각종 핑계를 대고 있을 누군가에게. 우리의 약속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컨디션을 위해. 그리고 약속 시간 몇 시간 전에 약속을 취소하는, 어떻게 보면 타인의 시간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그런 행동은 잠시 멈추도록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버텨준 나의 사람들에게 이 기회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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