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
그것은 곧 야만의 시대이지 않을까요?
강한 자는 당연하다는 듯 포식자로 군림하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는 게 순리인 세상 말이에요.
저는 그런 세상에 살아본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가 그랬죠.
교실에는 혈기 왕성한 거친 소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튀기곤 했습니다.
내로라하는 꼴통 학교라서 더 심했을 거예요.
어른들의 폭력
교복을 벗고 나온 사회에도 여전히 폭력은 존재하더군요.
물론 학창 시절 때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고상해 보입니다.
교실에서의 폭력이 원초적이었다면 어른들 세상의 폭력은 제도화된 형태로 발전됐다고 해야 할까.
'알아서 눈치껏 잘 해라.'
주먹이 오가지는 않지만 그만큼 무서운 권력과 관습이 존재하죠.
좋은 사람
일과 사람에 치여서
사는 게 힘든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어디선가 그런 자조 섞인 댓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공감 가는 말이었습니다. 어디에서나 '좋은 사람'이 희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선의로 도움을 준 것일 뿐인데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런 의심을 하기도 하죠.
'혹시 내가 약해서 당한 건가?'
그러한 의구심은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사회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그간 말랑말랑했던 자신은 버리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도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을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그 방법을 설명하는 사람도 많고요.
평소엔 유하게 지내더라도 아니다 싶을 땐 단호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같은 류의 말들.
응,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고.
가령 아니다 싶은 게 얼마나 아니어야 진짜 아닌 건지 판단하는 것부터가 며칠은 고민해 봐야 할 일이랄까.
세상은 말랑하지 않지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칫 약해 보인다면 당장 먹잇감으로 인식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조금 심술궂게 굴거나 짐짓 무심한 척 팔짱끼고 있을 때도 있죠.
집 밖의 세상이 카스테라처럼 말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바속촉 라이프
그럼에도 단지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괴로운 삶을 견디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저는 내 사람들에겐 한없이 다정하고 싶지만 적을 만났을 땐 강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겉바속촉'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음식도, 삶도.
그래서 주말이 좋은 것 같아요. 얼마든지 나답게 살면 되니까요.
모쪼록 여러분다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from su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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