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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멤버십 50% 쿠폰 있는 거 아세요?

오지랖은 이래야지!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한국에 온 지 이제 2주 정도 지났다. 그간 밀린 병원 진료 및 건강 검진, 은행 업무 등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세 지났다. 급하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잠깐의 여유를 부리다 보니 또 일주일이 흘렀다. 아프리카보다 더 더운 한국 날씨와 +7시간의 차이를 극복하느라 손은 자주 붓고 다리도 땡땡 붓지만 지하철 타고 버스 탈 수 있어서 좋고, 힘든 계단도 제법 다닐만하다.


이번 주일 예배를 마치고 새언니랑 아이들을 만났다. 방문했던 교회가 강남이라 예배를 마치고 바로 현대 백화점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전국구 차는 여기 다 모였나 싶을 정도로 번잡한 강남 도로 한복판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비가 조금씩 운전석 유리에 톡톡 물방울이 떨어졌다.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후덥지근, 우중중한 날씨에 썩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오후 2시가 훌쩍 넘어 모두 배가 고파 예민해진 탓에 말이 툭툭 틱틱 오가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아공에선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곳이 없는데, 계속해서 남아공과 비교를 한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랐고 3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는데 복잡한 장소만 가면 여유롭고 한산한 유럽의 시골 같은 남아공이 그립다.

키오스크에서 편리하게 주문을 하고 자리가 없어 한참을 서성이다가 겨우 밥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우고 후식 먹을 생각에 들떴다. 역시 사람은 뱃속이 든든해야 좀 여유가 생기는건지,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밥 먹어보기도 오랜만이다. 들어오는 길 얼른 밥부터 먹자며 지나쳐온 여러 베이커리와 디저트 구경에 나섰다. 세상 언제 구경해봤나 싶은 신기하고 맛있어 보이는 조합이 넘쳐난다.


퇴식구에 그릇을 반납하고 나오는 데, 첫째 별이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씩 웃었다. 오래전부터 내가 백미당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걸 알았던 탓에 한자로 百味堂이라고 쓰여있는 간판과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

"너 먹을래?"

"아뇨. 엄마 좋아하잖아요. 엄마 먹으면 한 입만. 하하"

"다엘아 너는?"

"저는 아빠가 먹으면 한 입만 먹을게요."


진짜 한입만 안 먹을게 뻔하지만, 밥 먹고 혼자 한 개씩 다 먹으면 살찐다는 합리화 끝에 몇 차례 고민하다 두유맛 컵 한 개, 우유맛 컵 한 개를 주문했다. 계산하려고 섰는데 계산대 벽에 'T 멤버십 10% 할인'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남아공에서는 전혀 필요 없던 T 멤버십을 당당하게 꺼내 나도 할인받을 수 있다고 좋아하며 직원에게 휴대폰 바코드를 내밀었다.


"무슨 쿠폰 쓰시게요?"

"어... 10% 할인 쿠폰이요."

"그러니까, 무슨 쿠폰이냐고요. 보여주세요."

"여기, 이 바코드로 안 되나요?"

"네 쓰실 쿠폰을 보여주셔야죠. 저기 옆에 가셔서 검색해서 다운로드하시고 다시 오세요."

나도 이제 한 물갔나, 이런 것도 빠릿빠릿하게 못하는 나이가 됐나, 너무 남아공에서 오래 있었나 별 생각이 다 들면서도 빠르게 손을 움직여 T멤버십 검색 창에 '백미당'이라고 검색했다. 반갑게도 10% 할인 쿠폰이 바로 떴다. 신나게 다운을 받고 있는데 옆에서 계산 후 아이스크림을 받으려고 기다리던 한 손님이 나를 툭툭 쳤다. 그리고 좀 큰소리로 말했다.


"50% 할인 쿠폰 찾으시는 거죠?"

"아뇨. 10% 쿠폰이요."

"50% 쿠폰도 있어요!"


그러더니 나보다 2배는 빠른 속도로 휴대폰을 스크롤, 검색하면서 50% 쿠폰을 찾아서 다운까지 받아줬다.

"근데 OO라테 하고, 아포가토만 돼요." (oo라테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너무 고마워서 꾸벅 인사를 하고는 남편과 눈을 한 번 마주친 후 결제 요청에 추가 주문을 했다.


"아포가토도 한 잔 주세요!"


옆에서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직원은 10% 먼저 하고, 50% 적용해 주겠다면서 무슨 말이 그리도 빠른지 주문받고 계산 후, 50% 쿠폰에는 비밀번호를 넣었다. 그런 후 아이스크림과 아포가토까지 안겨주었다. 총 3개 시켰는데 11,500원 나왔다. 싼 값에 3개나 시켜서 넷이 나눠먹었다.


다시 인사를 하려고 아까 그 손님을 찾았는데 그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다크호스!


"오지랖은 저래야지!"

"엄마 오지랖은 별로 안 좋은 말 아니에요?"

"응 아니야. 오지랖이 왜 나빠~ 오지랖이 원 말이 다른 사람일에 지나치게 간섭할 때 쓰는 말은 맞는데, 지금 저분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알려준 덕분에 우리가 덕을 봤잖아. 너무 고맙지 않니? 하하."


통상적인 뜻으로는 오지랖이 썩 긍정적으로 쓰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길에 가방이 열린 사람에게 가방이 열렸다고 알려주는 일, 위험에 처한 사람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일 등 말이다. 세상이 험악해져서 간혹 도움을 줬다가 오히려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만, 그래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오늘 기분이 좋았다. 할인도 받고, 또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눠준 정보 덕에 마음이 훈훈해졌지 말이다. 오늘 먹은 아이스크림은 두배로 꿀맛이었다.


나도 오지랖 부려본다.

모르는 분 정보 주워가셔서 써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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