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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Aug 15. 2024

과학적 위법행위란?

르포르타주: 학문적 빈곤과 진실성 위배의 연관성

  과학적 위법행위란 주로 연구윤리 위배, 진실성 여부, 도된 연구설계, 출판된 내용과 과정의 신뢰성 등에 대한 문제를 의미하지만 광의적으로는 형법 저촉에 근거한 연구비 횡령이나 직, 간접 유용 따위를 포괄한다. 이는 타인이 힘들여 일궈놓은 연구 내용이나 과정을 허락 없이 훔치는 흔한 표절 행위보다 더 심화된 조직적 범죄 행위를 말한다. 이는 연구의 결과를 조작하거나, 실험 데이터를 날조하는 고의적인 행위를 포함하므로 연구 커뮤니티와 사회전반도덕성 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사건기록과 상세 보고서는 분야별 메거진이나 다양한 학술지에 게재되어 있으며, 특정 사례를 중심으로 과학 사기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조작 관리 관행, 학술 관련 출판의 개선 등 사기가 태동하여 소멸하는 시스템 전반에 걸친 비리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론을 비롯하여 연구의 진실성과 투명성, 그리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비롯하여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기도 한다.


  적어도 세상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알려진 과학저널 학술지 중 하나인 '사이언스'는 네덜란드 틸 부르크 대학교 사회심리학자이자 교수인 스타펠의 논문 한 편을 발표한다. 이름하여 '지저분함과의 싸움'이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는데, 논문 내용은 흔한 길바닥에서 행하여진 몇 가지의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지저분하거나 더러운 환경에 노출되면 편견을 보일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의 고정관념도 더 쉽게 노출된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의 내용과 주제가 강한 설득력이 있으며, 저널의 편집 담당 부서에서 일견 보편타당하다고 판단을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논문을 포함하여 스타펠 교수가 발표한 수십 편의 다른 논문들이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거듭 장식하기에 이른다. 명성으로 치자면 학술지로서 저널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네이처'에서도 뉴스 서비스를 통하여 이를 특필기고로 다루어 '지저분함이 고정관념을 만든다'라는 기사를 썼고,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서는 '쓰레기가 있는 곳에 인종차별이 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신문 헤드라인을 추렸다. [주기 1 참조]


  사이언스 저널에 스타펠의 사회심리학 논문이 발표되자 스타펠의 동료들 중 일부는 그의 실험 결과가 너무도 완벽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심각한 의문점을 지니기 시작했다. 결국 밝혀진 바에 따르면 논문에 제시된 실험의 결과들이 죄다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2011년 동료 교수들은 재현성을 검증한 증거를 제시하여 대학에 이의를 제기했고, 조사결과 모든 실험치의 값은 거짓으로 자명하게 드러났다. 이로서 스타펠은 교수직을 정직당했으며 그 이후로도 수십 건의 연구에 관한 광범위하고 치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교수직에서 정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대학에서 해고를 당했으며 그가 이전에 발표했던 58편의 논문들도 모두 데이터 조작을 이유로 철회되었다. 아울러 그의 모든 과학적 업적과 이력들도 더불어 깡그리 삭제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모든 명성이 초토화되어 재로 변하게 된 것이다. 들킨 것이 죄가 된 극명한 사례이다   


  후일 고백록 형식을 취한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미리 논지를 추상하여 머릿속으로 설계한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의 숫자들을 엑셀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고 자백하였다. 그는 또한 자서전에 진지하게 고백하기를,     

 "나는 연구 자료를 위조했고, 하지도 않았던 연구를 극적으로 꾸며 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고, 혐오도, 수치심도, 후회도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수행한 연구 전체를 가짜로 만들어냈다. 내 실험 결과를 함께 토론했던 교수들, 내가 가르쳤고 내가 기여했던 사회학습 수업, 그리고 내 실험과 교차검증에 참여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로 나눠 준 선물들까지도 말이다."     

  이 사건은 존경받는 교수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를 발표하거나, 완전히 조작된 연구 결과를 발표할 경우의 전형적인 사례들로서 심리학계는 물론이고 과학계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선사하였다. 그토록 신뢰받고 있으며 명망이 출중한 과학 저널들이 이토록 엉터리 수작과 진배없는 논문들의 게재를 승인하고 퍼블리싱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 믿을 수 없는 연구 결과물들이 얼마나 많이 발표됐을까? 이 사례를 통해 현재 우리가 과학을 하는 방식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른바 황우석 사태는 우리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결말이 날 수도 있었다. 바로 황우석이 자신의 연구를 철회하지 않고, 학계에서 평판과 자리를 유지하며, 치료 목적으로 인간을 최초 복제한 인물로 기억되는 결말이다. 다른 과학자들이 같은 시험을 재현하지 못하는 경우 연구 결과가 인정될 수 없다는 과학계의 자랑스러운 자기 교정 메커니즘이 이 사건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인간 난자를 사용한 황우석의 실험은 원래 성공률이 낮았기 때문에 다른 연구진이 재현에 완전히 실패했다 하더라도 기술이 부족해서, 난자의 품질이 낮아서, 혹은 그저 운이 나빠서 그런 거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황우석의 첫 치료용 인간 복제 논문은 다른 과학자가 재현할 수 없지만, 동시에 반증할 수도 없는 수많은 저명 줄기세포 연구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다. 획기적인 과학적 주장에는 폭넓은 지지나 거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떤 주장은 영원히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는 과학계의 자정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사기 행각은 한국의 용감한 언론인들 덕분에 드러났다. 황우석 연구진이 좀 더 치밀했다면 기자들의 노력으로도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황우석 팀의 논문에는 조작된 데이터와 이미지쌍이 포함돼 있었는데, 자세히 비교해 보면 명백한 거짓이 드러난다. [주기 2 참조]


  이런 논점을 좌시하여 사시미 눈으로 과학 연구를 순전히 상업적 차원으로 재해석하자면, 유사한 연구를 남들이 껄떡대지 못하도록 독점하여 애당초 침을 뱉어 놓거나, 접근불가의 수단에서 앵커링으로 묘박을 하는 행위마저 연구윤리에 위배가 된다면 도저히 할 말은 없다. 부끄러운 사실은 연구부정행위 사실을 직시하여 도려낸 장본인이 동료 과학자가 아니라 언론과 기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사안은 재현성 (Replication) 문제가 대두된다는 점이다. 모종의 과학적 발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우연히 일어난 일이나 장비 결함, 과학자들의 부정행위, 은폐한 결과가 아니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거나 혹은 일어나는 사건의 실체가 있어야 하는 점이다. 원칙적으로는 만약 어떤 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누구나 같은 실험을 반복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과학의 본질이고 세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다른 방법들과 또 과학을 구별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수행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재현되지 않았다면 결코 그것을 과학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재현성이야말로 과학적 원리 탐구의 근본이 된다.

  뜻하지 않는 실수나 결과를 조작하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항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사기꾼들은 늘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수행해 온 실험이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거나 혹은 꾸며내거나 다듬어 손질했다는 사실보다 정말로 우려스러운 것은 따로 있다. 심각한 문제는 이 사건을 그동안 과학계가 어떻게 다루어 왔고,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연구 결과인 논문을 게재한 적이 있는 학술 저널에서는 기 게재한 연구 결과를 검증한 내용의 재현성 여부는 다시금 게재할 수 없다. 연구의 중복성 때문이다. 어떻게 연구자가 주장하는 결과가 단순한 우연이나 의도적인 조작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입증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일까?

  그러나 연구 결과가 재현될지 아닐지에 대한 문제는 과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결코 아니다. 그것이 과학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교차 검증과 동료 평가 과정을 온전히 필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도 분명히 반영되어야 함은 과학의 기본 덕목이지만 교차검증 시스템 자체가 오염될 소지도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제3의 검증과정이 제대로 작동되어야만 잘못된 발견이나 실험 오류, 조작된 데이터를 차단하거나 대학의 명망과 연구자의 명성이라는 횡포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의 과학 시스템은 심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로 봄이 타당하다. 대단유의미하고 중요한 연구 결과가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학계에 보고할 만큼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경우라면 과학자들은 양자택일을 한다. 즉 과학계의 주목이흥미를 느낄 만큼의 수준으로 연구결과에 손을 보거나  편집 게름칙하면 그 결과들을 발표하지 않고 책상 서랍에 묻어두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한 여파로 과학적 기록은 왜곡되고 교육 방법과 정부 정책은 완벽히 훼손된다. 인류사회에 유용하게 사용될 결과를 기대하며 과학에 투입했던 막대한 자원이 실제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알맹이 없는 허망한 연구에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오류와 실수가 약속대련식 교차검증과 동료 평가 과정이라는 허울로 아무런 제한 없이 무사통과하고 있는 실정이 바로 그것이고, 그로 인하여 저서로 둔갑한 책이나 언론 보도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은 온통 부정확하고 과장되고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 또 혹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쓰레기 들로 채워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라면 그럴듯한 쓰레기 정보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사고까지 일어나고 있다. 항간에 출간된  책들에는 과학자가 악당과 싸우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사이비 과학자, 창조론자, 점성술사와 같이 과학을 본의 아니게 잘못 이해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과학을 악용해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분연히 싸우고 있다는 아름다운 망상이다.

  하지만 더 큰 거대 악은  쭉정이 채워진 함량미달의 과학 논문이 진실이라며 작당한 당사자들이 팀 스피릿으로 함께 못질한 거푸집으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폭로되 이전까지는 수갑을 차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다과연 그들이 정말로 수갑을 찼을까? 스타펠과 황모씨의 근황이 궁금하신가? 뉴스그룹을 뒤져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안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창피나 쪽팔림은 통과의례처럼 이 또한 지나가는 순서에 불과한 모양새다. 


주기 1 : D.A. Stapel S.Lindenburg, 'Coping with Chaos: https:doi.org/10.1126/science,1201068

주기 2 : 출처: SBS 뉴스 2023.06.28 10:00


참조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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