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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Aug 30. 2024

블랙홀은 산책길이 아니다

르포르타주: 사실의 탑은 진실이 아니라 사기의 단초가 된다.

  논문 검증은 예비조사, 본조사, 재현성 검증의 세 단계의 절차로 치뤄지는데, 대부분은 본조사에 착수하기 전 제1, 제2 저자 이외 교신저자의 참여 사실 여부가 도마 위에 올라가 잔인하게 해부된다. 항간의 우스게 소리로 제1저자는 개, 제2 저자는 냥이, 교신저자는 개와 냥이를 정성으로 돌보는 집사나 혹은 사료를 잘챙기는 누군지가 지목이 된다는 뼈 때리는 은유가 있다. 


  연구과정이나 본문에 치명상을 입은 논문은 자의 반 타의 반 의지로 철회되는 경우가 있다. 논문 철회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동족말살이다. 이러한 행위는 종종 과학기술계의 형이라고 한다. 사형집행마감된 이후, 철회된 논문들은 부관참시를 당하거나 지옥의 윗 단계인 연옥으로 수감된다. 그 이유는 철회된 논문을 그냥 삭제해 버리면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슷하지만 다른 주제로 이미 연구에 많이 인용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즉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로 다른 학자들이 어떻게 연구했는지를 요약하여 정리하는 선행연구 결과막대한 피해를 조장하기도 한다.


  철회된 논문에는 내용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전과자 딱지를 달고 발행기관이 망하지 않는 한 온라인에 영구 수감되며, 본문 내용에 주홍색 사선의 스탬프로 철회 (Retracted)라는 굵은 글씨로 대차게 각인된다. 일부 비양심적인 학자나 연구자는 철회 딱지가 옹골차게 붙어있는 본인의 기록을 온라인에서 삭제를 원하며 발행기관에 협박과 회유, 로비 따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인터넷상 기록 생매장은 불가능하다.

  본시 인터넷 자료트리 구조와 정보 커널 특성이 마치 불사신의 괴물과 같아 완전히 죽였다 해도 익명의 누군지는 자료를 꼼꼼히 보관하고 있기에 언제고 호출하면  다시 살아나는 좀비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석,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하여, 이 대목에서 내심 떨고 있는 과학기술자들이 상당하다는 것은 오래 전에  밝혀진 사실이다. 이건 그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부관참시를 당할 수 있는 문제다. 아날로고 텍스트를 디지털화 해놓은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단면이자 병폐이기도 하다.)

  리트렉션을 전용으로 수집하는 웹사이트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과학문헌에서 철회된 1,800건 이상의 논문들을 분류한 데이터를 48년이 지난 2018년도에 와서야 퍼머넨트로 꾸준히 업데이트 발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징그러운 불사신으로 거듭 진화한 것이다.

연옥에 수감된  철회 논문

  어떤 논문들은 철회 이유가 모호한 경우도 있는데,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아널드는 2020년 영국 팀이 발표한 사이언스 저널에 효소와 관련한 일체의 논문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우선은 논문대로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고 제1저자의 실험노트 조사 결과, 데이터 기입 과정에서 고의적 누락이 있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한데 해명 사유가 불분명하여 제1저자가 단순 실수를 한 것인지, 혹은 제2, 제3의 저자가 나쁜 짓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당사자인 아널드 박사는 '고통스럽지만 이 부분을 솔직하게 시인한다'라고 언급했다.

  아무래도 논문철회 분야에서 최강의 우승후보자는 약물 실험 데이터를 가짜로 엮어낸 일본의 마취과 의사 후지이 요시타카로 철회된 논문의 수가 놀랍게도 183 건에 달한다. 하지만 어떤 저널에서는 이 거짓 데이터를 지적하여 철회하려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거나, 혹은 발견되었다 해도 저널을 향한 돌팔매질이나 알량한 명성을 빌미로 철회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논문만이 해당되지 않으며, 과학자들 자신의 연구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주의해야 한다. 대체로 논문은 연구자 단독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때로는 공동저자가 무고한 동료들로 이루어진 연구팀 전체의 명성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본의 아니게 선, 후배 공저자들의 이름은 진흙탕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와 반대의 경우라면 기득권을 쥔 기성 과학자들의 묘한 뻘짓으로 하여금 유탄을 맞은 선량한 후배나 제자들의 경력이 위태롭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끼리 서로 싸잡아 망해가는 것이다.


  만약 논문을 철회하게 되면 해당 논문의 인용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긴 하겠지만, 종종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경우가 많다. 여전히 철회된 사실을 모르는 연구자들이 이를 계속하여 인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해부학자 논문들은 274개의 다른 논문에 인용이 되었고, 이 논문을 인용했던 과학자들 중 겨우 25%만이 그 논문이 철회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또 인용된 논문의 83%는 심지어 이미 철회된 논문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런 좀비 논문들은 사형선고를 받아 이미 죽었다는 것을 숨긴 채 여전히 도서관 서재나 웹의 문헌으로 옹크리고 앉아 선량한 연구자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다.      


  잘못된 사기 논문 한편이 학계를 장악하여 부랑자처럼 떠돌게 되면,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은 돌멩이로 파리를 때려잡는(돌팔이?) 의사들의 처방으로 하여금 이미 멸종되다시피 한 이를테면, 한물간 전염병의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홍역 백신의 불신에 대한 그럴싸한 연구보고서가 바로 그 예시이다. 이는 최악의 과학 사기사건으로 과학계와 의학계 전부를 속였을 뿐만 아니라, 치료에 대한 대중 인식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초래하는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이 바로 1998년도 의학 저널인 '랜싯'에 발표된 영국의사 앤드류 웨이크필드의 백신 연구에 관한 엉터리 논문이었다.     

실제 블랙홀은 이런 상상의 모습이 아니다.

  블랙홀은 산책길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잡초나 길바닥에 널려있는 쓰레기가 아니기에 천체물리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인들은 육안으로 볼 수도 없다. 우리 은하와 우주에 존재한다는 블랙홀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체물리학자들은 드디어 블랙홀을 최초로 촬영했다고 주장한다. 또 유전공학자들은 심각한 면역질환을 지닌 몇 명의 아이들이 유전자 가위질 치료법으로 완치되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공중보건의학자들은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한 HIV 양성반응을 보인 동성애자들의 경우 바이러스를 전달할 가능성이 실제 제로였음을 밝혔으며, 실험물리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해 다이아몬드 에서 정보의 순간 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과학이 이룩한 수많은 업적들 중에서 이러한 몇몇 경이로운 결과들을 접하게 되면, 인류가 이룩한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들 중 하나가 과학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강조하거니와 이런 놀라운 결과들은 반드시 진실을 담보해야만 하고, 우리는 그 결과들에 기뻐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어야 한다.     


  결언을 언급하자면, 모름지기 연구 논문이라면 재현 가능한 자연현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사실을 쌓아 올린 탑이 아니라, 엄밀하게 실증된 현상을 증거로 제시하여 드래프팅을 해야 할 것이다.

  답이 수렴되지 않거나 혹은 명료하지 아니한 인문사회 분야와는 달리 과학기술 분야의 논문이라면, 느낌을 서술하는 수필이나 허구의 사실을 바탕으로 엮어내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탐구해 낸 정수가 되어야 하므로   집필자나 교환 저술자는 비록 죽을 각오까지는 아닐망정, 허위기록 술에 있어서 만큼은 손모가지 하나쯤은 잘려나갈 각오로 냉정 자세를 해야 함을 소망한다.


  긍정의 힘을 믿어야 하는 우리로서일상빨래처럼 흔하게 널려있는 과학기술의 발표나 그 결과, 또는 무책임한 메스미디어의 뉴스포르노대하여 무조건 신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이것들을 대하는 올바른 애티튜드는 끝까지 짚어보고 의심하라는 점이다.

  그래서 '신뢰하되, 반드시 검증하라'는 러시아 속담과 나의 견해는 궤적을 같이한다. 신뢰와 검증은 천칭의 분동처럼 치우쳐 기울지 아니한 수평을 유지해야 하고 노냥 평행선일 수밖에 없다.


참조문헌

1. Bell Labs 물리학자들의 논문 철회. Science. 2003

3. Marshall E. 과학적 부정행위 Science. 2000; 290

4. Sovacool BK. 현대 과학의 불가피 Journal of Bioethical Inquiry. 2008

5. Merton RK. 과학 사회학: 이론적 및 경험적 조사.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 1942.

6. Smith R. 연구 부정행위란 무엇인가? COPE 보고서 2000: 출판 윤리 위원회.

7. Krimsky S. 과학적 부정행위가 이해상충의 요인이 되는 경우. 의학 및 법률. 2007

8. De Vries R, Anderson MS, Martinson BC. 정상적인 잘못된 행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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