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그럴듯하고 익숙한 거짓말을 토대로 상상하여 매우 사실적이거나 혹은 메타포(은유 따위)로 서술한 주관적 표현을 일컬어 소설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완벽한 허구의 복합체이다. 하지만 무릇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허구에 문학이라는심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 위대한 완벽한 거짓말을 유도해 낼 수 있는지의 능력에 철학적 의미를 빙자하여 공감하며 환호한다. 본시 인간은 추상을 근거로 현상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기만과 술수라는 막강한 학습 능력을 바탕으로 지구를 지배해 왔다.인간이 학습시켜 조종할 수 없는 동물을 혹여 본 적이 있는가?
태생은 북유럽 출신임에도,전쟁물자의 공급이 쉬웠던 탓에 독일에 거점을 둔 폭탄 공장을 차려 떼돈을 번 일개 장사치가(아니라 실은 화학공학 박사였다) 의미 없는 대량 학살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유서에 포상조건을 만들고학살의 대가를 당의정으로 재포장하여 인류 생존역사에 기여한 인사에게얼마간의 포상금과 징표를 수여하는바 이것을 알프레드노벨이 수여하는 상이라 칭하고 있다.
혹여, 살인의 방어기제 (Defence mechanism)가 없었다면 알프레드 노벨은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으로 인류에 회자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참혹한 죽음이나 인간이 인간을 도륙하는 살인이야 말로 더불어 생존해 온 인류가 피해야만 할 거대한 숙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역사는 생존 본능에 근거한 정복(도륙)과 살상의 역사가 전부인 것은 아무리 좋게 포장한들 퍽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같은 인간으로서 생명의 존엄성을 고심하고 추구해 온 바 공존과 사랑과 또한 평화는 실상 요원한 피안이었고, 무릇 숱한 사상이나 철학, 종교마저도 전쟁과 살육을 회피할 만한 명료한답을 줄 수 없었고, 오히려 그것들을 악용하여 더 많은 인간들의 순혈을강요해 왔다. 그리하여 아무리 거부한들 생존을 위한 살인이라는 방어기제는 기실 인간적이라는 점이다.컥...! (이 대목에서 구역질이 날려고 한다.하지만 참자...)
그렇다면 정당방위를 위한 살인이나 정의를 앞세운 살상은 타당한가? 연쇄살인범이나 인간쓰레기로 취급받는 이들을 법리의 잣대나 신의 이름으로, 혹은 도덕적 합의하에 함부로 처형하는 것은 과연 정의롭고 정당한 일인가? 간접살인자가 직접살인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즉, 선량하기만 한 당신이 그를 잔인하게 죽여도 될 만한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당신이 수행해야 할 직접 살인을 국가의 월급을 받는(형무소 직원)에게 하청을 줘도 된다는 말인가? 이러한 질의에 관한 답변은 누구라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기에 우리의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다.(이 중에 누구라도 죄 없는 자, 저 여인을 이 돌로 머리를 내리쳐라! / 요한 7-8)
그러한 숙제의 해결 방안이라는 게 고작 '이보게 친구! 그건 말일세, 저 불어오는 바람만이 답을 알고 있다네...' 어쩌고 라며(Blowing in the wind)체념과한탄으로 노래하던 늙은 싱어송 라이터 밥 딜런에게 노벨위원회는 문학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어찌 판단하자면, 아너러블 (Honorable) 만큼 빌어먹을 음모가 무성한 것도 없다.
(음모라... 설마 하니 거시기 털은 아니겠지?)
누군지 나에게 문학을 폄훼하고, 철학을 오도하며 법리를 짓밟는 무식한 공돌이라고 삿대질을 해도 그만이다.전혀사실이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