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택시를 탄 적이 있다. 택시기사가 아들, 아내, 친구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를 내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며 별생각 없이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입술 두께와 인간관계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처럼 입술이 얇으면 친구가 없고, 입술이 두꺼운 사람은 주위에 친한 사람이 많다."라는 것이다. '친구 없다.'는 말에 괜스레 화가 났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 정말 친하게 알고 지냈던,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20년 지기 친구와 단절했기 때문이다. 안 좋게 헤어진 20년 지기 친구가 떠올라, 잠시 화가 났다. 입술 두께와 인관 관계와의 연관성은 '미신'이겠지 하며 이 또한 별생각하지 않았다.
저녁 먹고 있는데 아들이 울상이다.(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부모로서 당연히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아들의 고민은 '학교 선생님이 친한 친구 이름 세명을 적어내라는 것'이었다.
- 이게 무슨 고민이야? 그냥 옆에 있는 친구, 아무 이름이나 적으면 되지.
내 생각과는 달리 아들이 생각하는 친한 친구 이름 적어내는 일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아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엔 '진정한 친구'가 없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잠자코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아들과 같은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저학년 초등학생일 때는 친한 친구 이름 적어내는 것이 "고역"이었다. 어리고 순수한 마음에 아무나 적어내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상대방도 나를 친한 친구라 여기고 인정받아야만 성립이 되는 것이었고, 인정받지 않고 적는 것은 거짓말 또는 잘못된 짓이라 생각했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친구들에게 찾아가, 친한 친구 목록에 네 이름을 적어도 되냐며 간곡히 부탁을 해야만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학년일 때는 꽤나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나는 저학년 아들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 그냥 아무나 적어. 지금 네가 만나고 있는 친구들 어른 되어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다 뿔뿔이 흩어져. 그리고 친구 많다고 좋은 것도 없다. 친구 없이도 사는데 크게 지장 없다. 아빠도 친구 없다.
'친구 없다.'라는 말에 아들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순간 창피함이 밀려왔다. 아들을 위로한답시고 '나는 친구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자랑은 아닌 것이다.
저녁 먹고 난 후 단절한 친구 등의 여러 인간관계를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주위에 친구나 지인들이 많은데, 나는 왜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을까? 나는 왜 친한 친구들과 결별한 것일까? 정말 아내 말대로 내 입술이 얇아서 친구 관계가 단절된 것일까? 처음에 언급한 어느 택시기사가 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가 다시 떠올랐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하고 허구를 집어넣어 소설을 쓰고, 그 소설 속에 내가 느낀 감정이나 깨달음을 녹이려 노력했다. 아들과 아버지 관계, 친구 관계, 직장동료 관계, 서클활동에서 회장과 총무관계를 이야기할 것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인간관계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의 인간관계 설정'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