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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라뜨 Sep 13. 2024

친구관계 2

필요한 존재, 친구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살아온 경험을 통해 친구라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달랐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이 그랬다. 교장이고 교감이고 교탁에 올라가면 항상 단체생활의 중요성, 친구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 여러분, 지금 옆이나 주변을 둘러보세요. 누가 있죠? 바로 친구들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친구들,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나 우리나라에서 각 개인이 혼자힘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극히 드물어요. 각 개인이 뭉쳐 단체가 되고, 그 단체 안에서 서로 어울려 의논하고 행동하죠. 이런 식으로 서로 으쌰으쌰 하며 일을 합니다. 그리하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일들도 해결되지요. 이래서 단체생활, 단체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중심에 여러분 옆에 있는 친구들이 있지요. 특히 같은 반의 친구들. 수만 명의 인구와 인종 중에 같은 지역에, 같은 나이로 만난 것. 이 얼마나 귀중한 인연입니까? 소중한 인연인만큼 서로 싸우고 미워하지 말고 서로 친하게 지내요.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주고, 불운한 친구가 있다면 내 일처럼 관심 가져주세요. 아시겠죠?

 이런 식으로 친구의 소중함을 계속 강조했다. 



 학교에 등교하면 책상 하나에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그러니 한 책상에 두 명이 짝이 되어 수업을 받는다. 어느 날은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앉는 자리를 달리했다.

- 여러분, 친구들하고 다 잘 지내죠? 요번에는 이름ㄱㄴㄷ순으로 앉지 말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짝을 지어 앉을 거예요. 알겠죠? 내일부터에요.

 그 어린 나이에도 스트레스가 확 올라왔다. 계획에도 없던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고 낯을 가리는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 대화를 나눈 친구에게 부탁 같은 제안을 했다.

- 우리 짝궁하자. 짝을 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할 수 있지?

- 응. 그러자.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준비를 할 때쯤, 짝을 하기로 했던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 미안, 너랑 짝 못할 것 같아. 다른 애랑 하기로 했어. 진짜 미안.

 스트레스가 쌓였다. 내일 더 짜증 나고 화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이미 짝을 이루어 앉아 있었다. 여자들은 여자끼리, 남자들은 남자끼리 앉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책상에 대화도 해보지 않은 여자아이가 벌써 앉아있었다. 내가 앉을 자리는 그 여자아이 옆자리 밖에 없었다. 여자아이도 나처럼 짝을 못 찾은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다 짝을 찾아, 동성끼리 앉아있었다. 나와 그 여자아이만이 성이 달랐다. 그 여자아이도 나처럼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또한 다른 친구들이 “너희들만 커플이네”라며 놀렸다.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 화는 고스란히 나에게 부과되었다. 

- 아. 짜증 나. 정말. 이 선 넘어오지 마. 넘어오면 다 잘라버릴거야.

 나도 화가 났다.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내게 화를 내니 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 선생님에게 제일 화가 났다. 여자아이가 책상을 반으로 나누어 선을 그었다. 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 

 며칠 후, 담임선생님은 다시 좌석배치를 달리했다. 키순서대로 하기도 했고, 오는 순서대로 앉히기도 했다. 그런 것을 하며 계속 “친구 만들기”를 강조했다.

- 여러분. 인생에 나를 위해 울어 줄 친구 3명만 있으면 그건 성공한 삶이에요. 그만큼 친구가 중요해요. 또한 여러분들도 옆 친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해요.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죽을 거예요. 사람이 나이 들어 수명이 다하면 죽잖아요. 장례식장에 죽은 여러분을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여러분의 인생 점수예요. 모인 사람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고, 사람이 없을수록 낮은 점수죠. TV를 보세요. 위인이 돌아가시면 어때요? 많은 국민들이 모여 추모하잖아요.   

 친구를 많이 사귀라는 것인지, 위인이 되라는 것인지, 친구가 많으면 위인이 되는 것인지 헷갈리는 말이었다. 어찌 되었든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친구가 많으며 존경받는 인물이 되라는 말인가 보다. 선생님은 그 이후에도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한 배려, 노력을 다시 언급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맞는 말은 아니다. 특히 막무가내로 친하게 지내라는 “친구관계”에 대해 나는 다른 생각이다. 친구는 계약관계가 아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신뢰를 쌓아도 한쪽이 인성이 나빠서 이용하거나 마음이 돌변하면 그 관계는 끝이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라는 것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노력한 만큼 되돌아오거나 유지되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한 친구 숫자가 인생의 점수라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 친구관계. 집착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친한 친구 만들기”를 설득당했다. 내가 집에 있으면 형과 누나가 집에만 있지 말라고 했다.

- 밖에 나가서 놀아. 집에만 있지 말고.

- 밖에 나가서 뭐 하고 놀라고?

- 밖에 친구들하고 놀아라고.

 형과 누나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몸소 보여주었다. 집으로 걸려오는 친구들의 전화벨소리, 활짝 웃으며 즐겁게 나누는 전화통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하는 몸치장, 친구들 때문에 항상 바빠 보이는 행동들. 그런 형제들의 모습과 선생님의 가르침에 내가 겪은 친구에 대한 안 좋았던 경험은 희석되어 갔다. 그리고 친구에 관한 새로운 환상이 생겨났다. 그 환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남들보다 나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빨리 친한 친구들을 만들어라고.

 친한 친구 만드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엔 내성적이며 조용한 내 성격도 한 몫할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누구에게 ‘이거 해보자 또는 같이 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회를 엿보며 꾸준히 친구 만들기에 노력했다. 고학년 초등학생이 되었다.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에 친구 사귀는 것도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 어린 나이에 교회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시도했다.

- 그 교회에 가입하고 싶은데, 어떡하면 됩니까?

 나의 전화를 받은 교회 관계자는 내가 성인이라 생각한 듯하다.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사용하며 계속 “돈” 이야기를 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교였는데, 종교를 통해 친구를 사귀려는 마음은 접었다. 더 이상 교회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가 바뀌니 기분도 새로워졌다. 여기서 “인생 친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중학교 1학년때,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되게 활발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붙임성이 좋았다. 친구가 되기 위해 말도 항상 부드럽게 하고 이것저것 많이 양보했다. 그랬더니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나를 업신여기기 시작했다. 장난도 심하게 쳤고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나에게 창피를 주며 본인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쌓였고 결국 나의 분노는 폭발했다. 

- 너, 오늘 집에 가지 말고 남아라. 남아서 나랑 싸우자.

 나는 많은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선전포고를 했다. 나를 업신여겼던 친구가 웃으며 대답했다. 

- 그래. 오늘이 니 제삿날이다. 넌 큰 실수 했다.

 여러 명이 있는 곳에서 그 친구도 큰 소리를 쳤다. 근데 이 녀석이 쉬는 시간마다 내게 확인했다.

- 진짜 나랑 싸울 거야? 그러다 나한테 맞아서 코피 나고 어디라도 부서지면 어쩌려고?

- 죽어도 상관없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당혹스러워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운동장으로 나왔다. 공개적으로 선전포고를 했기에 많은 학교 친구들이 알고 있던 터였다.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여러 명의 친구들이 우리를 따라왔다. 운동장 구석진 곳에서 우리는 가방을 벗고 싸웠다. 나와 싸운,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왜 쉬는 시간에 물어보며 걱정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싸움을 못했다. 나도 그때까지 태권도, 복싱 등 격투기술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화가 나서 본능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는데, 녀석은 겁을 먹고 반격조차 하지 않았다. 구경하던 친구들도 싱거워했다.

 다음날,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게 다가와 사과했다. 지난날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 학교 끝나고 나랑 오락실 가자.

 가기 싫었다. 하지만 녀석의 끈질긴 부탁으로 승낙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오락실로 갔다.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동전을 잔뜩 들고 왔다. 

- 네가 하고 싶은 게임 다해. 대신 부탁이 있는데....... 혹시 다른 친구들이 나와 싸웠냐고 물어보면 네가 좀 맞았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예상치 못한 부탁에 얼떨결에 “응. 그래”라고 대답했다. 나는 게임을 두 판 정도만 하고 집으로 갔다. 녀석과 더 이상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녀석의 지난 행동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듯했다. 또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친구들에게 치근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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