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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라뜨 Oct 04. 2024

친구관계 15

나의 결혼


 진수의 집안 사정이 많이 안 좋은 듯하다. 예전에는 술값을 나눠서 냈는데, 지금은 우리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

- 친구들아. 너희들이 십시일반, 돈 좀 모아서 내 술값 좀 내줘라. 몇천 원씩만 모으면 돼. 내가 옛날에는 술도 많이 사줬잖아. 

 진수의 하소연에 우리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진수가 자리를 비울 때면 본심이 터져 나왔다.

- 돈이 없으면 술 마시러 모임에 안 와야지.

 진수는 행색도 많이 달라졌다. 낡은 후드 티에 캡모자를 뒤집어쓰고 수염도 깎지 않아 지저분해 보였다.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아 배는 불록 나온 것이 지금보다 열 살 정도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예전처럼 만홍이의 옷차림이나 행색을 지적할 상황이 아니다. 희한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한 영화들은 조조할인으로 다 관람하고 뱃살 빼야 한다며 테니스를 배우러 다니는 것이다. 일관되게 돈 없는 척이라도 하면 친구들이 그냥 넘어갈 텐데, 영화 다 보고 운동 배운다며 돈을 지출한다. 그러니 술값 내주는 것에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해도 “친구”니깐 좋게 넘어가려고 노력했다. 

 진수를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나 시선도 예전과 다르게 미온적이다. 예전에는 진수의 말에 성규 등의 친구들은 큰 리액션을 보이며 반응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다르다. 어떨 때는 진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릴 때도 있다. 진수도 미온적인 친구들의 반응에 당황했는지, 친구들의 관심을 다시 살려고 노력했다. 진수는 대학교 시절 사귀었던 다래와의 잠자리 이야기로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친구들의 관심도 그때뿐이다.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 여자친구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진수가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진수의 차는 10년 전 대학교 시절 때 몰던 소형차 그대로다. 대학교 시절에 스틱기어(수동)가 주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오토가 대세다. 스틱기어 소형차가 진수의 현 상황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대기업에 근무하니 맞선 자리가 많이 들어왔다. 경찰공무원에 합격하자마자 결혼한 태풍이처럼, 남자의 직장이 좋으면 결혼하는 것에 유리한 것이다. 입사 후 빠른 결혼을 상상했는데 마음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사 선배들이 시켜주는 맞선자리는 정말 별로였다. 대부분이 노처녀인 딸이나 친척 등이었다. 시집 못 간 딸이나 친척을 빨리 시집 보내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회식날 같은 반의 선배가 자신의 딸을 자랑했다. 

- 우리 딸이 이제 행정공무원이 되었어.

 딸이 공무원이 되었고 이제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당시 총각이었던 나를 지목했다. 그 선배는 신랑감으로 내가 “괜찮다.”며 조만간 맞선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날 회식 자리에 장난 삼아 장인어른, 사위하며 호칭을 부르기도 했다. 회식이 끝난 뒤 며칠이 지나도 딸을 소개해주겠다던 선배가 말이 없었다.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혹시나 물어보았다. 

- 우리 딸이 남자친구가 있었어.

 회식 때는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그 짧은 시간에 남자친구가 생길 수도 있고, 전에 만났던 남자를 다시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추측은 나보다 더 괜찮은 신랑감을 찾는 것이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대기업 현장에서 용접하는 기술직보다 돈 더 많이 버는 화이트 칼라나 의사, 변호사를 더 선호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용접하는 기술직보다 공무원인 본인의 딸이 더 아까운 것이다. 

 회사 내 같은 반에 병문 선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선배에게서 맞선 제의가 들어왔다. ‘친구의 딸이 결혼 안 했다.’며 내게 접근했다. 

- 내가 촌에 있는 초등학교를 나왔어. 촌 학교는 교실이 많지 않잖아. 그래서 1학년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야. 그러다 보니 많이 친해져서, 아직도 초등학교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어. 그중에 나랑 친한 친구가 있는데, 딸이 아직 결혼을 안 했네. 한번 만나봐.

 미리 준비했는지,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서둘러 연락을 하고 만났다. 나와 동갑이었고 대화가 잘 통해 모든 것이 괜찮았다.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데, 회사에서 병문 선배가 자주 찾아왔다. 맞선 상황을 자주 물었다.

- 잘 되어가고 있어? 괜찮지?

 부담이 되었다. 어느 날은 단언을 하며 요구했다.

- 너 내가 소개해 준 아가씨와 결혼하면 무조건 양복 2벌 이상은 해줘야 한다.

 이것 때문에 나에게 아가씨를 소개해주었구나? 좋은 인연이 된다면 알아서 해줄 것인데, 이렇게 대놓고 요구를 하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얄밉다. 목적이 있어 내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맞선을 소개해 준 병문 선배는 현장에서 소문이 좋지 않았다.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면 말을 가려가며 말해야 하는데, 막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저번 회식 때, 술자리가 끝나고 몇 명 선배들이 모여 포커판을 벌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문 선배가 들으라는 듯이 한마디 던졌다.

- 아직도 술 처먹고 포커 치는 또라이 같은 새끼들이 있나?

 이 말은 들은 한 선배가 노발대발했고, 포커를 치려던 모든 선배들이 병문 선배에게 달려들었다. 주위에서 간신히 말려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장에 소문이 퍼졌는지 우리 공장 내 작업자들은 병문 선배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병문 선배가 나를 찾아왔다.

- 야! 너 회사에 나와 관련해서 떠도는 소문, 그런 것을 만나고 있는 아가씨에게 말하면 나한테 죽는다. 

 그 말에 기가 막혔다. 말 할 생각도 없었는데, 본인이 제발 저리는 도둑처럼 걱정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참 없어 보이고 꼴 보기 싫다. 대답하기도 싫지만 “네”라고 대답하며 자리를 피했다. 

 주선자가 부담되고 꼴 보기 싫으니, 좋게 이어가던 만남도 부담이 되었다. 결혼하면 결혼생활도 간섭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 같다. 또한 공장 내에서 나 때문에 저 친구가 결혼했다며 자랑하고 다닐 것은 확실하다. 저런 사람과 엮이는 것이 싫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던 중 만나던 아가씨와 사소한 다툼이 발생했다. 그것을 계기로 이별했다. 내가 노력하며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병문 선배가 주는 부담감이 나를 멈추게 했다.

 헤어지고 나니, 병문 선배가 또 나를 찾아왔다.

- 너 헤어졌다면서? 밥상을 챙겨줘도 못 먹어? 병신 같은 게.

 병문 선배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렸다. 헤어지길 잘한 것 같다. 



 우여곡절이 있어도 맞선자리는 들어왔다. 내가 다니는 회사 내, 사무실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 나 다니는 병원 간호조무사 있는데, 남자친구가 없다고 하네. 왠지 너랑 잘 맞은 것 같더라. 한번 만나봐.

- 네. 신경 써줘서 고맙습니다.

 고등학교 선배가 만나보라며 맞선녀의 연락처를 보냈다. 나는 맞선 볼 여자에게 연락을 하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맞선녀와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다.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결혼은 타이밍’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나도 결혼할 마음이 있고 여자도 결혼할 마음이 있으니 결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부분 성규가 주말에 친구들을 불러 모으지만, 이번엔 내가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나의 배우자를 소개해 줄 계획이다. 약속장소로 횟집을 정했다.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나의 배우자를 소개해 주었다. 동건이가 또 새끼손가락을 보이며 나의 배우자에게 친구들이 많은지를 물어보았다.

-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총각이에요. 혹시 주변에 동성 친구들 중에 결혼 안 하신 분 있으면 단체미팅 어때요?

- 한번 알아볼게요.

 나의 배우자는 친구들의 농담도 잘 받아주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배우자가 친구들이 다 순진하고 착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횟집에서 죽은 회를 주었다고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 우리가 갔던 횟집사장 참 못됐다. 자기 못 느꼈어? 우리 일어설 때 횟감이 수북이 쌓여있던 거.

- 웃고 떠든다고 신경 못 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네.

- 횟집 사장이 젊은 사람들 왔다고, 가볍게 보고 죽은 횟감을 준 거야.

- 못됐네. 에이 돈만 날렸네. 근데 그런 것은 어떻게 그리 잘 알아?

- 엄마가 옛날에 횟집 했거든. 그래서 횟감에 대해서 좀 알아. 근데 우리 결혼할 때 사회자는 생각해 놓았어?

 배우자의 말에 난 자신 있게 말했다.

- 응. 성규로 할 거야.

- 확실히 하기로 한 거야?

- 아니. 아직 이야기 안 했어. 근데 내가 부탁하면 100%야. 나와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야. 고작 그거 못해주겠어?

 못된 횟집 사장에게 속았지만, 그래도 큰돈을 들여 친구들에게 대접했다. 친구로 지낸 지가 10년이 넘었다. 나의 결혼식에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

 여러 친구들 중 나의 결혼식 사회자로 성규를 택한 것은, 그가 키도 크고 잘 생겼다. 게다가 말도 잘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친구들과의 모임을 할 때면 성규와 진수가 가장 말을 많이 했다. 특히 성규는 말을 재미나게 한다. 사회자로 제격인 것이다. 근데 오늘 대접한 죽은 횟감으로 기분이 이상하다. 죽은 횟감이 마치 복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복잡한 결혼절차로 인한 불안한 마음일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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