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의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당연히 모임에 성규가 주인공이다. 결혼준비부터 시작해서 각 부모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까지, 본인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 결혼하려니깐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
성규의 이야기를 듣던 중, 의아한 것이 하나 있다. 나의 결혼식에 성규가 사회를 봐주고, 반대로 성규 결혼식에 내가 사회를 봐주기로 예전에 약속했었다. 성규의 결혼식이 코 앞인데도 성규는 내게 “사회자”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나 말고 다른 친구에게 부탁한 것 같다. 또 기분이 나빠졌다.
결혼식 사회를 안 봐서 편하긴 하지만 약속한 상황이라, 어떤 상황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인지 언급을 하고 내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성규는 왜 내게 결혼식 사회를 맡기지 않는 것일까? 느낌상 왠지 나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다. 결혼식으로 바쁜 성규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물어보기 전에 10년 넘게 친하게 지내온 친구인 성규가 내게 먼저 말해주기를 바랐다.
성규의 결혼식 날, 우리 부부는 참석했다. 멋진 신랑, 신부가 보였다. 결혼식에 모인 친구들과 성규네 가족, 가희의 가족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가,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성규 결혼식의 사회는 동건이가 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내가 예전에 했던 말들이 생각났는지 내게 물었다.
- 자기, 우리 결혼식에는 성규 오빠가 사회를 보고 성규 오빠 결혼식 사회는 자기가 봐주기로 했잖아. 근데 다른 사람이 사회 보네. 자기랑 무슨 일 있었어?
- 아니. 성규가 사회자, “사”자도 내게 이야기하지 않더라.
- 헐. 정말 왜 그래? 도대체 성규오빠에게 자기는 뭐야? 정말 열받아. 내 신랑이 이런 취급 받는다는 게.
난 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
- 무슨 말 못 할 상황이 있겠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성규와 진실된 소통을 통해 헝클어진 오해와 섭섭함을 풀고 우정을 다시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여기서 끝이 났다. 성규의 결혼식 이후, 성규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났다. 그리고 육 개월이 넘도록 성규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나도 성규에게 받은 상처와 실망, 오기로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성규 외 다른 친구들에게도 실망했다.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물었다.
- 자기, 친구들 안 만나?
- 응. 연락이 안 오네.
- 자기가 먼저 연락하면 되지. 뭘 기다려?
- 아니야. 성규가 날 외면하는 것 같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어. 연락 안 오면 안보는 거지 뭐.
아내의 입김이 작용했다. 아내가 가희에게 연락한 것이다. 안부를 물어보며 나의 친구들 이야기를 물어본 듯하다. 그리고 친구들 모일 때 우리 신랑 안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한 것 같다.
- 그러게. 왜 형부를 안 부르지? 신랑이 친구들과 술 마시러 가면 함흥차사야. 집에 들어올 기미가 안 보여. 전화하면 ‘좀 있다 들어간다.’하고 다시 전화하면 ‘지금 간다.’ 이러면서 결국 새벽에 들어와. 어떨 때는 전화도 안 받아. 도대체 몇 차까지 가는지 모르겠어. 근데 형부는 안 그러잖아. 웬만해서는 1차만 하고 집에 들어가잖아. 형부랑 같이 술 마시면 나도 언니를 통해 신랑이 뭐하는지 알 수도 있고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왜 형부를 안 부르지?
성규의 아내인 가희도 의아해하며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장모님 귀에 들어갔고, 장모님을 통해 성규 장모님에게까지 흘러 들어갔다.
아내의 말로는 성규가 성규의 장모님에게 한소리를 들은 듯하다. 부부의 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가희와 결혼하는 바람에 친구들의 우정이 깨진 것 아니냐고.
장모님에게 한소리 들은 것이 효과가 있는지, 성규에게서 연락이 왔다.
- 한번 모이자. 이번에 태풍이도 온다. 추석 앞두고 부모님 집에 와 있어. 태풍이 마누라는 애 본다고 늦게 온대. 그러니깐 태풍이 혼자 고향에 올라온 것이지.
성규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태풍이 소식을 자세히 알려주며 모임에 나오라고 했다. 가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모임에 가려는데 즐겁지가 않다. 발걸음이 무겁다. 친한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모임에 도착했다. 모임 장소는 중심가에 위치한 고깃집이다. 처음 성규가 악수를 건네며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다른 친구들과도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오래간만이다.
손 잡으니 결혼하기 전, 친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하지만 그 느낌은 찰나의 짧은 착각이었다. 친구들은 고기와 술을 먹으며, 오래간만인 나와 태풍이의 안부를 잠시동안 물었다. 그 후엔 최근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또 저희들끼리 놀러 간 모양이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계곡물이 흐르는 산으로 여행을 갔다. 냇가에 놀다 사람 얼굴크기 만한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처음 봉지를 발견한 만홍이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모여서 검은 봉지의 내용물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공포영화를 많이 봤는지, 아무도 섣불리 풀어헤치려는 사람이 없었다. 손 끝으로 봉지 겉면을 찔러보니 물컹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만홍이가 용기를 내어 봉지를 칼로 찢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삽결살로 보이는 돼지고기가 있었다. 친구들은 환호했다. 그렇지 않아도 구워 먹을 고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다들 즐겁게 고기를 구워 먹는데, 이상하게 만홍이는 한 젓가락 먹더니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머지 친구들은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몇 시간 후 만홍이를 제외하고 다들 배탈이 났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친구들이 만홍이를 말로써 공격했다.
- 만홍이, 너 그거 상한 고기라는 거 알고 있었지? 그러니깐 안 먹은 거잖아? 알고 있었으면 말을 해주든가. 왜 잠자코 있었어? 우리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지?
- 너, 우리가 계곡에 도착하기 하루 전 날, 미리 와서 상한 고기 숨겨 놓은 거 아니야? 이실직고해라.
친구들은 상상을 해가며 만홍이의 음모라고 몰아갔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재미는 있지만 씁쓸하다. 계곡으로 놀러 간 것에 나와 태풍이는 참가하지 못했다. 태풍이는 서울에 집이 있어 못 가지만, 나는 같이 갈 수 있었다. 또 기분이 상한다. 이 모임에 괜히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가 다른 화제로 바뀌었다. 한 달 전에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성규 차를 타고 태풍이 신혼집을 방문했는가 보다. 성규가 서울 방문한 것에 감탄을 쏟아내었다.
- 이야. 역시 서울은 다르더라. 사람 엄청 많더라. 다들 옷도 얼마나 잘 입고 다니는지. 이쁘고 잘 생긴 사람 많더라. 근데 그중에 만홍이 스타일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많이 보이더라. 노숙자라고.
성규의 농담에 만홍이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 그리고 우리 태풍이 집에 갔잖아. 이야~ 우리 태풍이 출세했더라. 대궐 같은 아파트에 집 넓더라. 집 안에서 공 차도 되겠더라. 자가 맞지?
태풍이는 한 손을 가로 저으며, 은행 빚이 많다고 했다. 성규는 태풍이를 더 돋보이게 해 주었다.
- 경찰 공무원이지. 마누라 서울 4대 병원 중 한 곳의 간호사지. 아들 낳았지. 서울에 집 있지. 거기다 겸손하기까지.
연극무대의 독백을 보는 것 같다. 다들 성규의 화려한 언변에 즐거워했다. 웃고 떠드는 가운데 나 스스로 “구경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 중 어떤 모임에도 내가 없었다.
2차를 가기로 했다. 다들 일어설 분위기다. 그때 뜬금없이 진수가 나와 성규를 번갈아보며 한마디 했다.
- 야. 우리들 친했잖아. 너희들 왜 그래?
성규가 당황해하며 진수의 말을 막았다.
- 아니야. 그냥 오해일 뿐이야.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성규가 나를 쳐다봤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돈을 모아 술값을 계산하고 2차 맥주집으로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성규가 내 옆에 붙어서 걸었다.
- 장모님한테 이야기 들었어. 오해다. 나 너 (왕)따 시킨 적 없다. 우리 싸운 적도 없잖아. 어찌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지.
기가 찬다. 성규는 지금까지 나의 아내에게 “제수씨”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하고 있다. 화가 나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짧게 토로했다.
- 야! 너 왜 우리 집사람에게 반말하고 이름 부르냐? 네 여동생이냐? 너 그럼 태풍이 집에 가서 태풍이 마누라한테도 반말하고 이름 불렀냐?
성규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 내가 미안하다.
약속된 결혼식 사회자나 모임에서 왜 나를 제외시키는지 물어보며 무섭게 추궁하려다 관두었다. 분명 어느 정도 내 잘못도 있을 것이고 내가 놓친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일로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상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다시 화목하게 지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짧은 그 한마디 사과에 나의 불만과 화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도 마음을 열고 예전처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