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뒤, 공장 중앙통로에서 희금 씨와 덕용 반장이 만났다. 둘이 만날 기회가 잘 없는데, 만났으니 이는 우연보다는 의도된 계획일 것이다. 희금 씨는 덕용 반장에게 아는 척을 하며 말을 걸었다.
- 반장님, 잘 지내시지요? 반에 무슨 일 없죠?
- 아. 네.
- 근데 반장님 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희금 씨는 낚시 밥을 던지듯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므로써, 인사하고 바로 가려던 덕용 반장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 덕용 반장님, 난 정말로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진짜로요. 서로 언성 높이고 화내는 거 정말 질색이에요. 그런데 휴게실에서 별 희한한 소리를 들었어요. 그 사람 이야기 들어보면 그 반 분위기가 엉망이에요. “우리 반에 어떤 개새끼가 반 분위기를 흐리는데, 밟아 죽일 수도 없어 속이 아린다.”나 어쩐다나.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평화를 실천하고 사랑하는 제 입장에서는 우리 공장에 이런 증오나 사건사고가 안 생기길 바라는 입장이지요. 증오심이 가득 찬 채로 말한 사람은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랗고 목소리가 칼랑칼랑 했어요. 꼭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요. 반장님도 이 공장의 중요 직책을 맡고 계시니 알고 계셔야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희금 씨는 막말하는 사람의 모습과 행동거지를 한번 더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권수 형에 대한 악감정으로 가득 차 있던 덕용 반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그 길로 바로 권수 형이 있는 작업장으로 갔다.
- 야! 권수!
큰 소리를 내며 권수 형에게 다가가 두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 야이 씨발 새끼야. 네가 “우리 반에서 어떤 개새끼가 반 분위기 흐리고 다닌다.”라고 말했다면서? 그리고 밟아 죽이고 싶다고 했다면서? 사실이가? 바른대로 이야기해라. 거짓말하면 귓방망이 날아간다.
덕용 반장은 키가 180이고 마른 체형이다. 하지만 손이 크고 뼈마디가 굵었다. 덕용 반장이 말을 끝내고 한쪽 어깨를 뒤로 젖히며 손바닥을 펼쳤다. 권수 형은 덕용 반장의 손바닥을 보고 기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맞을 것을 대비해 몸을 살짝 틀어 고개를 최대치로 숙였다.
두려움에 몸을 떨며 고개 숙이고 있는 권수 형의 모습에 덕용 반장의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들었던 손을 내리며 경고했다.
- 야이 좆밥 새끼야! 마지막 경고다. 한 번만 더 내 욕하고 다니면 다가네로 네 대가기 쪼아버린다. 알아서 행동 처신 잘해라. 씨발놈아.
덕용 반장은 씩씩거리며 권수 형 작업장을 떠났다.
쉬는 시간, 휴게실에서 권수 형과 커피를 마셨는데, 권수 형은 덕용 반장에게 협박당한 일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또 아쉬움이 들었다. 덕용 반장이 분노를 가라앉히고, 왜 저 사람이 나를 욕했는지 뒤돌아보고 반성도 해봤으면 어땠을까? 무턱대고 화만 내지 말고 소통으로써 오해를 풀었다면 반장으로써의 권위가 더 서지 않았을까? 아까 이야기했든 모든 것이 내 생각 같지 않다.
권수 형은 이제 덕용 반장과 말도 섞지 않았다. 같은 공장 내 마주치기라도 할 것 같으면 피해서 다녔다. 아침조회시간에 덕용 반장이 무슨 말을 하던지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덕용 반장도 별말하지 않았다.
권수 형은 그날 겪었던 일을 “치욕”이라고 여겼다. 권수 형은 보복을 생각했다. 희금 씨 같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여전히 덕용 반장을 욕했고, 뒷담화의 강도는 갈수록 세졌다. 우리 반에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선배는 좋은 “구경거리”라고 했다. 공장에서 매번 반복되는 용접작업에 큰 낙이나 오락거리가 없어 심심했는데, 덕용 반장과 권수 형이 지칠 줄 모르고 서로를 비방하며 싸우니 재미난 것이다. 그 선배는 요새 둘의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에 출근한다고까지 했다.
없던 방법도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면 묘안이 떠오르는 것일까? 권수 형은 덕용 반장에게 복수할 것을 계속 생각한 듯하다. 어떤 날은 사무실의 대리를 불러 우리 반 월 생산계획표를 한 장 인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권수 형은 50대이고 이 공장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에 사무실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권수 형은 대리에게 받은 월 생산계획표를 본인의 작업장 출입구 쪽에 붙여놓았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말이다. 월 생산계획표를 보면 우리 반의 생산량이 많이 앞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주일 정도 일 안 해도 될 정도로 계획표에 비해 생산이 앞서 있다. 권수 형은 나를 비롯한 친한 직장동료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 공장에 쌓여있는 생산품들 보이지? 저거 다 우리 반에서 생산된 거야. 그리고 월 생산계획표를 봐. 우리가 사무실에서 정해놓은 것보다 훨씬 앞서 있어. 지금과 같은 노동강도로 일하면 몇 년 뒤에 반드시 근골격계로 몸 상한다. 우리 월 생산계획표대로 생산하자. 내가 우선적으로 모범을 보일께.
권수 형은 정말 행동으로 보였다. 작업 속도를 천천히 늦추기 시작했다. 권수 형이 지그에서 생산이 늦어지니 다른 공정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권수 형의 지그에서 완성된 물건이 다른 지그에 세팅되고, 그곳에서 다른 작업을 거쳐 또 다른 지그로 가는 공정이, 원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당연히 덕용 반장이 알아차렸다. 작업시간에 권수 형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권수 형은 용접작업을 한 뒤 용접한 부위기 식기를 기다렸다. 다가네나 끌로 용접부위의 스펙터(용접불똥)를 없앴다. 그라인더로 한번 밀면 몇 분도 안 걸리는 일인데, 그것으로 1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덕용 반장이 짜증 내며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내 작업장에 내가 일하는 방식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덕용 반장은 도와주려고 하면 저번처럼 용접장갑을 벗고 쌍욕을 하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한 지그에 담당 작업자가 버젓이 있는데, 반장이 다 해버리는 것도 못할 일이다. 반장은 작업자를 관리하는 것이 주 업무이며, 덕용 반장은 명색이 관리자인 “반장”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후배 대의원이 덕용 반장을 찾아왔다.
- 반장님, 작업시간에 일하는 작업자를 계속해서 쳐다보면 안 됩니다.
해수욕장에서 비키니 입은 여자를 계속 쳐다보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작업자 쳐다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 왜? 명색이 반장이 작업자들 일 잘하고 있나 못하나 있나 쳐다보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인데?
- 계속 쳐다보는 것이 인격모독에 걸려요. 그건 것 때문에 우리 공장 내 작업장에 CCTV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깐 앞으로 조심해 주세요.
- 어떤 놈이 인격모독으로 신고했는데?
- 그런 것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대의원들이 말하지 않아도, 덕용반장은 그 신고자가 권수 형인 것을 알았다.
권수 형 덕분에 노동강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작업을 끝내놓고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무실에서도 관여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장구석구석에 우리 반 생산품이 많아, 더 이상 쌓아둘 곳도 없었다. 월 생산계획표대로 생산되어도 아무 문제없는 것이고, 덕용 반장네 반에 일어난 일들은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덕용반장이 하루에 피는 담배량이 부쩍 늘어났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공정회의에서 덕용반장의 반 생산 그래프의 높이가 굉장히 낮아졌다. 사무실 사람이나 다른 직∙반장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무언이 덕용반장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회의시간에 어깨에 힘주며 발언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덕용 반장은 공장의 어느 구석진 곳에서 쭈그려 앉은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다.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지? 해결할 수 없다면 이 문제의 원인인 권수 놈을 어떻게 엿 먹이고 욕보일까? 끊임없이 생각하니 답이 조금 보였다. 예전에 권수 형이 왜곡된 사실을 주변에 퍼뜨려 덕용 반장의 심기를 괴롭혔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덕용 반장도 똑같이 되갚아주기로 했다.
덕용 반장은 권수 형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의 흠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권수 형 작업장을 지나치다 슬쩍 쳐다보니, 권수 형은 여전히 끌로 용접 후 스펙터(불똥)를 제거하고 있었다. 몇 분 후 덕용 반장은 또다시 권수형의 작업장을 지나쳤다. 권수 형이 상의 윗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어서 보는 것이 보였다. 문자를 확인하는 것인지, 주식을 보는 것인지,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인지, 폰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다시 상의주머니에 폰을 집어넣고 느긋하게 일을 했다.
다음날 아침조회 시간에 덕용 반장은 반원들에게 사무실에서 내려온 공문이나 지침사항을 일러주며, 눈은 계속 권수 형을 관찰했다. 권수 형은 덕용 반장의 말에 관심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을 응시하고 있었다. 덕용 반장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권수 형은 핸드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용이 날아다니며 총알을 쏘는 게임이었다. 적이 쏘는 총알이나 미사일을 맞지 않으면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오래 살아남으면 기록이 경신되고 핸드폰 번호를 공유한 사람들과 비교도 된다.
아침조회가 끝나고 덕용 반장은 홀로 반삽에 남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공장의 중앙통로를 기점으로 해서 각 bay를 돌아다니며 친분이 있는 작업자를 찾아갔다. 안부나 날씨이야기를 하며 말문을 열었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 요새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오죽했으면 머리털이 많이 빠져 원형 탈모가 왔다니깐.
덕용 반장의 “머리털”이야기에 상대방은 대부분 “왜?”라며 이유를 물었다.
- 우리 반에 게임에 미친놈이 있는데. 명색이 반장으로서 한마디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인격모독이니 지나친 간섭이다라고 치부하니깐 무슨 말도 못 하겠어. 이 놈이 게임에 얼마나 미쳤냐 하면, 아침조회시간에도 명색이 반장인 내가 말하는데 대가리 처박고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있고, 작업시간에도 20분 일하고 3시간 동안 게임을 한다고.
솔직히 현장에서 20분 일하고 3시간 동안 게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듣는 사람들은 머리를 갸우뚱했고 거슬러 들었다. 덕용 반에 생산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대부분이 생각했다. 듣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덕용 반장은 거리낌 없이 “권수 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