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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y 24. 2023

밥 먹으려고 운동해요.

우리 동네에는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짧고 굵게 걸으면 1시간 남짓 소요되는 산 아래에는 종류도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합니다. 남편은 가끔, 


"운동이 목적이야? 밥이 목적이야?"


라고 묻곤 하는데 음... 아무래도 밥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요. 운동을 핑계로 맛집 탐방... 나쁘지 않은 것 같죠?


헉헉대며 산을 오르다 보면 후회가 마구 밀려오게 만드는 깔딱 고개가 있습니다. 계단이 어찌나 많은지 괜히 산에 올랐다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하죠.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전망에 후~ 긴 숨을 들이켜게 되고,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쾌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동서남북 다르게 펼쳐진 전경을 바라보며 굳이 우리 집이 어디쯤 있나 찾아보게도 됩니다. 동네에 산책로가 있는 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면 고민에 휩싸입니다. 어떤 고민이냐고요? 바로 '뭘 먹을까?'이죠. 거창한 음식은 운동한 게 아깝고, 대충 때우기는 억울한 느낌이랄까요? 그럴 때 고민 없이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후루룩 먹기 딱 좋은 잔치국수와 지단김밥 맛집입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잔치국수는 그릇 가득 담아줘도 문제없습니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국수가락이 씹기도 전에 꿀떡 넘어가거든요. 


음식을 유난히 오래 씹는 습관이 있어 대부분의 음식은 먹는 속도가 느리지만, 국수는 함께 먹는 이들과 속도를 맞출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이것이 잔치국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먹는 속도가 느리면 더불어 먹을 때 참 많이 불편하거든요. 음식을 절반도 못 먹었는데 다른 이들의 그릇이 비워지는 게 보이면 그때부터는 마음이 조급해져 더 느려지고, 꾸역꾸역 먹다가 체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불편한 이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마주 앉은 분들이 어색하고 어려우면 먹는 속도가 더 느려지거든요. 적당히 속도를 맞춰주는 것도 예의인데 아무리 열심히 씹어도 넘어가지 않는 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도 잔치국수는 효자입니다. 


심학산 입구 [행주산성 국수]


두 아이와 함께 심학산에 올라 정상에서 '야호' 한 번 외치고 내려오다 국숫집에 들러 잔치국수, 비빔국수, 지단 김밥을 시켜 배 두둑하게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무와 나무 사이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급매] 땅 70억


가타부타 설명 없이 땅값만 적힌 현수막을 보며,

"엄마, 땅이 70억이래."

"그러게. 땅이 큰가부지."

"얼마나 크길래 70억이나 할까?"


앵글이와 둘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동글이가,


"땅이 70억이라고? 기름진가?"


......

순간 앵글이와 둘이 멈칫했습니다. 어? 그러다 동시에 깔깔 웃고 말았어요.


"동글아, 그게 아니지."

"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기름진 땅이 왜 필요해."

"기름진 게 비싼 거 아니야?"


동글이의 말을 들으며 웃었지만 아이의 생각이 참 예쁘고 고맙습니다.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 좋은 땅인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기특했거든요.


'맞아, 기름진 땅이 좋은 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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