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내고, 나를 보낸다
'열줄 소설 공모 신청작'
“영호야, 이영호!”
매몰차게 걸어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그는 미동 하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점점 보폭을 넓혀가며 나에게서 도망이라도 치듯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 사이로 그의 뒷모습이 흔들리듯 쏟아져 들어왔고, 단 몇 걸음 만에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거리가 벌어졌다.
스무 걸음쯤 걸었을까, 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며 말했다.
“수정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그의 말에 마음이 누그러진 난,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그를 안으려는 순간, 내 몸은 찬란한 빛에 휩싸여 산란하듯 흩어졌다.
지난날을 후회하거나 나를 떠난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아래를 향한 그의 시선 끝엔 오랜 응어리를 덜어내어 작은 미소를 머금은 나의 육신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