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y dearest self
지난 주 모종의 에피소드가 삶에 대한 애정을 더욱 고취시켰다.
사람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성장과정 중 여성이어서 느즈막히 경험하는 신체적 변화가 있는데 미안하게도 이것이 남성은 알 수 없는 깨달음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가 보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에 첫 월경을 시작하고 평생 규칙적으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왔는데 어느날 소통이 뜸해졌을 때 정적이 주는 환기는 열여섯살에는 이해할 할수 없는 변곡점을 가져다 준다.
지난 주 내가 정적을 알아차렸을 때 먼지가 뿌옇게 앉은 머릿속에 쉬-소리를 내며 실바람이 세어들어오는 신선함과 함께 또 다른 문이 열렸다. 주책맞게 셋째가 생긴것은 아닌지 심장이 콩닥거리고 순식간에 행운인지 고난인지 모를 시나리오를 그려보다가 문득 이제 시작보다는 끝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할 때 조금은 머쓱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는 기분이 어지간한 풍파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중년에도 이런 파도가 치는가 놀라웠다. 하지만 사실 월경이 멎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라서 다른 문제가 있는지 볼겸 병원을 찾았다.주변에 다소곳이 앉은 젊은 새댁들이 가득한 산부인과 로비에 들어서니 조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아이를 기다리는 젊은 여성의 얼굴들을 하나같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기 없이 말갛고 뽀얀 얼굴들이 참 고왔다. 배가 불러와 뒤뚱거리며 들어오는 산모에게는 내 순서를 양보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데스크 직원이 예약상황을 내려다 다보며 여의사 진료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요, 젊은 산모한테 여의사는 양보해야지. 저는 남자 선생님도 괜찮아요."
왼쪽 난소에는 혹이 있는데 모양이 좋지 않네요. 혹시 모르니 피검사를 하고 가시는 것이 좋겠어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덧붙였지만 '암검진'이라고 쓰인 영수증을 보고는 냉정을 잃고 말았다. 4년 전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던 날로 돌아가 온갖 가상의 시나리오로 정신이 부서졌다. 아이들이 너무 어린데, 난소암은 특히나 치료가 쉽지 않은데, 이미 벌려놓은 일들은 어쩌지...
갑상선수술이후로 더이상 암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에 늘 조바심을 숨기고 사는데 저수지 가득한 물을 가두어둔 둑이 무너지듯 간신히 쥐고 있던 끈이 툭 풀려버렸다. 그 후로 일주일은 말할 나위도 없이 지옥이었다. 수없는 '만약에'가 머릿속에 가득차 그 중 어느 하나도 결론을 짓지 못한 채로 둥둥 떠다녔고 의식없는 몸이 습관처럼 하루 하루를 사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주말에 시부모님이 다녀가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쩌면 다행이었다. 보통때와 다름없이 행동해야할 강제적 조건때문에 삼일이 빠르게 지나갔으니까.
솥뚜껑 트라우마
암세포가 몸 어딘가 생긴 사람은 어디서든 암세포가 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는 걱정을 숨기고 산다. 자기도 모르게 조바심을 낼 때도 많다. 어떤 일이든 더 잘 하고 싶고, 더 빨리 인생의 성취라고 이를만 한 것이 이루어졌으면 바란다. 이제 건강을 챙기는 일마저 숙제처럼 느껴져서 운동도 강박적으로 하고 허투로 보내는 시간들에 죄책감이 드는 날도 있다. 그렇게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만날 때마다 긴장하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이 큰 그림자처럼 삶의 전반에 내려앉아 있다. 물론 빛과 그림자는 한쌍이다. 어둠속에 들어가야 빛나는 것들을 찾을 수 있듯이, 삶의 어두움을 경험하면서 소중한 순간들의 반짝임에 더 감동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잊을까 두려워서 아이가 무심코 던지는 작은 표현들을 일기장에 기록해 두고 40줄에 들어서는 늙어가는 게 싫어서 거울도 자세히 안 봤는데 수술 이후에는 셀카가 드라마틱하게 늘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이 종점을 향해 가는 막차를 탄것 같은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언제나 인생의 가장 큰 위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결과를 듣기 전날은 시끄러운 뇌를 멀리 보내버리고 싶어서 하루 종일 미드에 빠져서 흘려 보냈다. 생각없이 보기 좋은 히어로물을 틀어 놓고 어찌나 집중해서 봤던지 모든 번뇌를 잊은 순간이 여러차례 있었을 정도였다. '플래쉬'는 젊은 청년이 일종의 사고로 능력을 얻어서 도시의 영웅이 되는 뻔한 스토리였는데 속도를 매개로 하다보니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나오면서 인생과 가치관에 대한 철학적 감상이 여러차례 등장했다. 가뜩이나 감상적인 상태의 가상의 암환자가 빠져들기 딱 좋은 소재였다. 지구-1에서 파생된 수없이 많은 다중 우주에 등장인물들의 도플갱어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어 있는 설정인데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아서 더 빠져들었다. 종종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나의 특정한 면만 기억하고 운동하면서 만난 인연들이나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확연하게 다른 것을 경험한다. 그밖에도 수없이 많은 단편적 관계들에는 제각기 다른 나의 모습들이 매우 다르게 비춰진다. 마치 극중에서 지구-1에 살아 있는 등장인물과 전혀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도플갱어가 지구-2, 3, 4 등등에 거쳐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똑떨어지는 정장보다는 드레시한 블라우스와 드레이프 팬츠를 즐기는 새침한 직장인으로 사는 세계와 잠옷바지에 목늘어진 티셔츠 차림으로 볶음밥 하나 만드는데 주방 전체를 너저분하게 흐트러트리는 애기엄마로 사는 세계, 중년이 넘도록 사춘기 소녀처럼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딸래미로 사는 세계,.... 진짜 내가 살아 있는 지구-1은 어디일까.
Dear every version of me across the multiverse
덕분인지 잠들기 전쯤에는 결전의 날을 위한 소설같은 계획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어짜피 내 인생은 조각조각 나누어진 퀼트이불같은 것인데 또 다른 조각보 하나 더 덧대어진다고 나머지 천조각들이 바뀔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과 함께 혹시 암진단을 받는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암환자 택을 붙이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느 순간 아무 준비없이 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삶도 많은데 이 정도면 관대한 처사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위로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수많은 약점 중 하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내 삶의 다른 어떤 부분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매주 가는 스쿼시 레슨도 스케줄을 조금 조정하면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아이들 밥챙겨 주는 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청소나 뒷처리 인력을 쓰면 될 것이다. 그밖에 내가 영위하는 모든 일상에서 암환자이기때문에 포기해야하는 것은 누구도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레 손발을 묶을 필요는 없다고 위로했다. 물론 운동 횟수를 줄인다거나, 머리를 짧게 자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모든 다중우주의 나에게 약간씩의 양해를 구해야하겠지만, 그리고 모든 다짐이 이닥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근거없는 허풍일지 모르지만, 이런 일련의 생각들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지구-1의 암환자가 나머지 행복한 도플갱어들을 덮어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과 함께.
My dearest self
헛웃음이 날 일이지만 다음날 결과는 고맙게도 시시했다. 마음을 다잡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추적검사를 하면서 지켜보기로 하고 해프닝 아닌 해프닝으로 끝났다. 물론 온전히 다행이었다. 드라마틱한 일주일이 지나고, 안심을 온전히 실감하는 하루가 더 지난 후에 드디어 조금 평화로워졌다. 그리고 암수술 보다도 더 큰 깨달음을 공짜로 얻은 것에 감사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이렇게 세심하게 디자인된 삶을 나에게 배정한 것에 감사하고 싶었다. 다중우주에 흩어진 나의 모든 도플갱어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온전히 갖게 되었고, 때로는 어리석고 흉한 모습들도 있지만 그마저 받아 들일 수 있는 조금 더 성숙한 스스로가 된 기분이랄까. 어떻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야 완벽하게 암을 극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자를 짊어진채 모든 버전의 나를 오염시키지 않고, 삶이 가진 완벽한 순간들로 채운 최상품 조각보에 대한 비현실적인 집착없이, 나의 가장 나다운 모습 하나를 진실하게 살아야지. 그 중에 넘어지면 넘어진 대로 그것도 삶의 일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