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암암리에 들숨과 날숨까지 평가한다.
'저 친구 점심 때 봤어?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물떨어져 가니까 물통을 미리 두개 챙겨오더라구.
일머리는 사소한데서 보인다니까?'
'어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얘기하는데 보니까 애가 마음이 되게 여려.
고객한테 싫은 소리 한번 들으면 울고불고 그만두겠더라.'
직장이란 참 묘한 곳이다. 마치 운동선수들처럼 운명공동체로 묶여서 끈끈할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끝없이 평가하고 자기 잇속을 계산해 보게 된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는 서로 짐을 나눠지고 가는 이라고 하던데 직장동료야말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프로젝트에 함께 투입될 때 팀원들을 둘러보고 서로 평가하면서 간혹 존재만으로도 좌절스러운 사람을 마주할 때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할 것이다. '아, 망했다.'
아픈 손가락
조직의 운영자로서 가끔 만나는 유형이다. 시쳇말로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인재들. 말과 행동에 악의가 없고 의리있는 사람인데 배움이 느리고 실수가 잦은, 너무나 성실한 타입이다. 일할 때 만난 것만 아니면 세상에 그렇게 좋은 친구가 없을 정도로 진국이다.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회사를 위하는 바람에 어떻게든 기회를 주고 잘 가르쳐서 곁에 두고 싶은데 아무리 기회를 줘도 쉽지 않은 아픈 손가락. 이기적인 운영자는 할 수 없이 조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에게 부탁한다. 큰딸에게 막내를 부탁하듯이. '잘 좀 가르쳐 줘봐. 열심히는 하잖아.' 물론 최강인재에게 맡기면 이 0.5인분이 기적적으로 1인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냉정하게 회사 손실을 최소화하고 팀별 발란스를 맞추는 선택을 할 뿐.
까다로운 일
업무 배정은 언제나 고민스러운 작업이다. 중요성과 난이도, 고객과의 관계 등을 파악하고 내부 직원들의 역량, 스케줄도 감안해야 한다. 팀내 갈등이나 직원간의 업무 스타일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가장 쉽게 결정하는 일이 바로 까다로운 일들이다. 고객사 담당자가 매우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인 경우, 업무 자체가 디테일이 많고 복잡한 경우, 또는 둘 다. 이 경우엔 당연히 우리의 최강인재 똑똑이들을 소환한다. 당연히. 인재 보호 차원에서 그들을 감싸고 돌 것같지만 이익집단에서 결과는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
추가 업무
외국계 기업과 일하다 보면 조직문화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체감된다. 사내 워크샵, 캠페인, 이벤트가 수시로 있다. 요즘은 애들도 잘 안 챙기는 할로윈, 이스터에그부터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소소한 이벤트부터 회의시간 준수 캠페인, 이름부르기 캠페인, 분기별 워크샵, 팀별 워크샵... 끝도 없다. 이 사람들 본업은 언제하나 싶게 프로젝트별로 TF를 꾸려서 진지하게 준비한다. 그럴 때 마다 그 팀에는 똑똑이가 한 명씩 꼭 있다. 사내 행사의 성패가 걱정되어 선별된 똑똑이 한 두명과 있으나 마나 해서 본업에서 뒤쳐진 아픈 손가락들의 모임. 본업은 본업대로 바쁜데 보는 눈이 많아서 성과를 안 낼 수는 없는 이 추가업무는 보통 TF의 리더가 지정해서 영입한 똑똑이 몫이다.
일상에서 고가의 옷이나 가방은 중요한 자리에서만 꺼내 입는다. 하지만 어떤 쇼핑장인의 말을 듣고 아차 한 적이 있다.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쓰는 빈도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니 매일 매일 쓸 물건이라면 비싸게 주고 사도 억울하지 않다고. 접근방식이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몸담은 회사는 효율을 최상의 가치에 두는, 가장 합리적 조직이다. 그 안에서 비싸고 좋은 '고성능'의 상품이 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매일 꺼내 써야 아깝지 않은. 그렇다면 출중한 능력을 스스로 감추고 아껴야 할까? 옛말은 참 틀린 말도 없지. 절대 새길 것. 아끼다 똥된다.
교통 정리
똑똑한 직장인이라면 스스로 강약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조율하고 협업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어떤 일을 어느 선까지 사양하고, 어떤 일에 앞장설지 당신은 분명 판단할 능력과 권한이 있다. 중요도가 낮은 이벤트 TF에 차출되어 왔다면 자신의 영역이 분명한 한 가지만 기똥차게 하기를 권한다. 전체를 조율한다거나 총대를 메려 하지 말자. 오히려 당신은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고, 좋게 말하면 '차근차근 성장하는 인재'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할로윈 입구 장식을 맡았다면, 호박과 유령 장식 따위는 과감히 버리고 바바라 크루거 스타일의 과감한 레드 이미지월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Supreme도 차용했던 그 강렬함으로. 이런 경우 당신의 평가는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당신에게 업무가 편중된다고 느낄 때 스스로 돋보일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조율하고 팀과 협업하는 자세를 보이기를 바란다. 일정부분 수용하고, 어떤 것은 정중히 사양하면서 소모되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바라 크루거 작품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