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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1일차

by 뇌팔이

사람이 정해 놓은 삶과 죽음의 경계는 간사하다.

얄팍한 심전도기가 기어가는지 멈추는지로 결정된다. 조금 기다려도 어두운 화면 속 지렁이가 꿈틀거리지 않을 때, 점점 작아지던 숫자가 0이 될 때.


사망선고가 내려지면 일사분란하게 장례가 시작된다. 어지럽게 주렁주렁 붙어있던 생명유지장치들을 모두 걷어 낸다. 그제야 부친의 맨얼굴을 볼 수 있다. 의료진이 얼굴을 깨끗이 닦고 침상을 가다듬어 차례로 한명씩 면회를 허락한다. 병원 장례식장에 연락하는 것은 이 바로 다음이다.


"실례지만 오늘 장례를 치를 자리가 있나요?"


부친이 돌아가신 병원 빈소가 꽉 차서 다른 곳을 알아보았다. 찾기 쉬운 대학병원 부터 찾았다. 몇군데 전화를 돌리고 멀지 않은 곳에 오후부터 사용할 수 있는 빈소를 찾을 수 있었다. 병원비 정산을 해야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주기 때문에 새벽에 작고하신 아버지 병원비는 응급실 원무과에서 가정산을 하고 시신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럼, 운구를 어떻게 하면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어짜피 사설 구급차를 부르기때문에 유족의 요청에 따라 빈소나 병원에서 불러준다.


운구차량은 한시간 남짓 후에 도착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한명이 이동식 베드를 끌고 화물통로를 통해 들어왔다.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하고 홀로 중환자실에 들어가 뻣뻣한 병원이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둘둘 싸인 시신을 싣고 나온다. 그리고 다시 화물 엘리베이터로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비좁은 베드위에 놓인 것은 조금전까지 침대에 자는 듯 누워있던 사람과 같은 무엇이 아니였다.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것만으로도 스산한 기운이 돌았다. 운구차량으로 함께 이동할지 물었지만 폐쇄된 공기를 나누는 경험은 엘리베이터 한번으로 족한 듯했다. 운구비용를 현장에서 결제하고 장례식장에 제출할 사망 진단서를 전달하면 장례식장소까지 운구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사신 안치실에서 각종 약품처리를 하고 입관, 발인시까지 시신을 보관한다.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이 생각났다. 아침에 일곱살난 유치원생을 깨워서 옷입히고 밥먹이고 데리고 나갔는데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는 순식간에 초등학생이 된다. 마치 그렇게. 아버지는 시신이 되어 이리저리 떠돌았다. 동시에 우리도 더이상 환자 보호자가 아니라 고인의 유족이 되었다. 어색한 유족들은 내 집처럼 드나들던 병원 1층 로비까지 밀려나와 무인자판기 커피를 나눠 마셨다. 서로 다독이고 아버지가 더이상 고통받지 않게 되어 잘 된 일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면서 앞으로 닥칠 일들을 머릿 속으로 그렸다.


돌이켜 보면 그 때는 실감이 안 났던가 보다. 새벽에 병원 전화 받고 달려와서 생사를 달리하는 순간을 지켜봤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순간의 찰나였으므로 그 경계의 전과 후의 차이를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그저 주어진 다음 일을 할 뿐.


아이들 생각이 났다. 만일 내가 먼저 유명을 달리해도 나의 배우자가, 아이들이 나의 주검을 물리적으로 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만으로도 마치 알몸을 보이는 듯 부끄럽고 무력한 기분이 스쳤다. 늘 위풍당당하던 아버지가, 그의 시신이 작은 침대에 묶이듯 실려서 덜컹이던 모습이 못내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되었기에. 덜컹이는 이동식 침대위의 모습은 병상에 누워 각종 기계들을 달고 있는 나약한 모습보다도 더 무력하고 낯설었다. 지나는 코너마다 길을 비키는 행인들의 불편이 느껴졌다. 최소한 구깃구깃한 병원 이불에 둘둘 말려있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까. 어떻든 삶이 끝나는 순간부터 지나는 모든 과정을 나와는 어떤 인연도 없는 계약당사자가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시신이 옮겨진 곳으로 우리도 이동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서두르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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