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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님이세요?

by 뇌팔이

다행이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모신 빈소는 아이들이 아플 때 몇번이나 들쳐업고 뛰어왔던 병원 장례식장으로 정해졌다. 진입로나 주차장, 주변 건물들이 낯설지 않아서인지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상주님이세요?"

열두평쯤 되어보이는 사무실 문을 빼꼼히 열고 엉거주춤 들어섰다. '조금 전 전화드렸던,...'후에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데 직원들은 매일 겪는 일처럼 유가족이 모두 모이면 설명하겠다고 대기실로 몰고 나왔다. 의례 상주는 남자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아들이 없는 부친의 상주는 맏딸이었다. 짦은 순간이었지만 뇌에 쌀알이 박히듯 눈 앞이 번쩍거렸다. 가상세계의 아바타가 변신하는 느낌이랄까. 어느 결에 상주가 된 나는 유골함과 수의, 상복이 전시된 낯선 공간에서 최대한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나머지 '유족'을 기다렸다. 그러나 곧 조금 늦게 도착한 동생 내외와 모친의 당황하고 주눅든 얼굴로 죄지은 듯 발을 끄는 모습에서 나를 보고 말았다.


“식사는 뭘로 하시겠어요?”

장례식장 여직원은 간단한 기본 비용을 설명하고 식사 메뉴를 물었다. 이제 장례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화장터를 어떻게 예약하는지 여타 질문은 모두 ‘장례지도사’와 상담할 일이라고 접어두고 최소한의 제공내역만 포함해서 계약을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그나마 닫힌 공간에서 우리 식구끼리 있을 수 있는 그 공간도 비워줘야했다.

“나가서 밥이라도 먹고 오자.”

빈소가 준비되려면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유령처럼 떠돌며 무언가에 쫒기다 보니 밥보다는 ‘갈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11월 말 병원앞 24시 국밥집에는 냉기가 돌았다. 겉옷도 벗지 않고 허연 국물을 휘젓거렸다. 동생내외는 둘다 대기업 직원들이라 이리저리 회사 지원사항을 비교해가며 장례물품이며 인력을 신청했다. 나는 나대로 납골당을 알아보고 계약서를 주고 받으며 사무에 바빴다. 그 사이 모친은 잠시 정신을 놓친 것 같았다.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다며 평소같으면 게눈 감추듯 해치웠을 순대 한 접시를 놓고 들었다 놨다 딸 접시에 올려주고 사위 접시에 올려주고 손도 눈도 맥락없이 움직였다.


“꽃이요?”

제부가 전화기에 대고 되물었다. 빈소에 꽃장식을 하느냐고 묻는다. 회사에서 인력지원의 일환으로 장례지도사를 지원해주는데 지도사와 통화하다보니 이것 저것 준비할 것들이 많단다. 그래도 혹시나 경황없는 유족들한테 덤탱이라도 씌우나 싶어서 제부와 내가 다른 빈소를 기웃거리며 현황 파악에 나섰다. 똑같이 생긴 빈소에는 저마다 재단처럼 꾸며진 단상에 고인의 영정사진과 명패,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국화꽃장식이 엇비슷한 스타일로 놓여있었다.


"다들 하는 건가보네요."

빈소 시찰을 하면서 식사공간도 힐끗 둘러보았다. 좌식 테이블이 열두개, 2층이라 자연광도 들어오니 나쁘지 않다고 두런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럴 정신이 있었나 싶지만 막상 그 순간에는 잡념없이 이런 저런 할 일이 있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관도 정하고 수의도 정하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갈 즈음에도 동생은 여전히 모친에게 붙잡혀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모친은 장례식에 모실 목사님 섭외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 목사님을 모실지, 언제 시간이 되고 언제 안 되시는지, 후보군을 추리고 연락을 돌렸다. 모친도 어딘가에 몰두하는 것이 덜 잔인한 시간이 될 것 같아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곧 그 일도 마무리 되어가려니 장례지도사의 부고문 초안이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일제히 부고문자를 돌리는 일에 몰두했다.


결혼준비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식장을 예약하고 대관료와 기본 사용료를 결제하고 각종 옵션을 패키지형태로 묶어 계약하고 초청장을 보내는 일. 다만 몇달동안 설레며 하던 준비를 반나절만에 두려움으로 준비한다는 차이가 있다. 사실 두렵고 무서웠다. 빈소가 준비되고 그 안에 상복을 입은 내가 서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떨렸다. 대학병원 가장 구석진 곳에 암울한 기운이 가득한 장례식장은 가끔 스쳐 지나기만해도 마음이 어두워졌었는데 내가 그 안에 들어와 가부좌를 틀고 앉다니. 공식적으로 내 슬픔을 인정하는 자리라니. 늘 감정을 숨기고 TPO에 맞춰 적당한 인격으로 살았는데 내게 장례는 중간이 없는 OX퀴즈 행렬에 서서 X보드를 들고 만인의 앞에 서는 일이었다. 특히 나 자신에게 가장 명확히 선언해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홀어머니가 남았다.

나는 상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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