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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장] 그녀 목소리

스물다섯 번째 날. 여보세요.

by 그린제이

"여보세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상대방을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데는.


사람들은 넌 왜 이렇게 매일 피곤한 목소리냐고

좀 밝은 목소리를 내면 안 되겠냐고

늘 기분이 안 좋은 거냐고

몸이 아프냐고

네 목소리를 들으면 내가 다 힘이 빠져.

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게 된다. 그 목소리의 힘을.

그녀가 일하는 곳은 관공서.

매일같이 문의전화가 온다.

괜찮은 사람들도 많지만 이상한 사람들은 더 많다.

문의전화를 한 사람들이 일단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대충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대충 묻고 대충 끊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하게 힘이 없는 수준이 아니다.

그냥 일하기 싫은 목소리가 아니다.

듣는 이도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무서운 목소리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잘 활요하는 중이다.




오늘 오전 관공서에 문의전화를 했다.

오전 10시 30분쯤이었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목소리로 '여보세요'를 하더라.

통화를 끊으면서 '이 사람은 정말 일하기가 싫구나.' 싶으면서 나까지 힘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짧은 통화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그런 생각이 드니깐 오히려 대단하다 싶어서 막 써본 짧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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