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일째 날. 마지막 챕터 ; 라테 예찬
이어서
현시점에서 나의 커피 역사의 마지막 챕터.
살아보고 싶은 동네가 있었다. 고즈넉한 맛이 일품이라 놀러도 자주 갔었었다.
집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동네였는데 기웃기웃하다 보니 어찌 이사를 가게 되어 약 5년쯤 살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무섭게 들이닥쳐 결국 안녕을 고했다.
그래도 사는 동안 꽤 재밌었다. 아지트로 삼은 카페도 있었고 그 카페에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지.
그곳은 테이블 3개 정도와 작은 테라스가 있는 카페였다.
테라스에 앉아있으면 앞쪽 정독 도서관 담벼락 위로 대나무가 숲처럼 울창했고 바람이 불면 대나무들이 우는 소리가 꽤 운치 있어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곤 했다. 참 좋았었다. 그 소리의 울림.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 커피. 커피.
그곳에는 굉장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 그곳에 데려간 동생이 말했다. "언니 여기 라테가 정말 맛있어. 한 번 먹어봐."
그때까지 나는 라테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비주얼부터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이전까지 보았던 라테잔보다 반쯤은 작은 잔이었고 크레마가 거품사이로 보였는데 색이 커피의 진함을 충분히 예측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그렇게 맛있는 라테는 처음이었다.
우유거품은 쫀득하며 크레마와 분리되지 않고 묘하게 찰싹 달라붙어서 커피의 고소함을 증폭시키는 듯했다.
이전에는 뭐랄까 우유거품 아래 커피가 있는 듯했다면 이건 잔 바닥이 보일 때까지 동행하는 느낌?
나는 그 길로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시작된 라테홀릭!
커피뿐 아니라 카페가 점점 아지트화 되어갔다.
자주 가다 보니 자주 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어 어느새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알고 보니 모두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근처에 사는 데다가 하는 일들도 비슷한 계열이라 비교적 쉽게 모두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그날은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몰랐었다.
재료가 같아도, 기계가 같아도, 사람에 따라 커피맛은 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커피맛은 천자만별이라는 것을.
그리고 라테가 우유거품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차이 난다는 것도.
아르바이트하던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그녀만 있을 때면 라테는 주문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살던 건물 아래층에 카페가 생겼다.
1층은 가게 2층은 집으로 아주 심플한 2층건물이었다.
1층 카페는 드립만 취급했는데, 어느 날부터 커피콩을 볶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빵을 굽나 싶었고 어떤 날은 매연처럼 괴로웠다. 켁켁
주변 민원이 늘어나서 연통이 점점 높이 올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괜찮았던 것 같다.
가끔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마시러 가면 카페 사장님은 직접 만든 블랜딩 테이스트를 부탁하곤 했다. 커피를 워낙 좋아했으니 많이 마시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아 기꺼이 마시고 의견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산미가 높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미식가들은 커피의 산미를 즐긴다고 하던데 그런 기준이면 나는 미식가는 안될 것 같다.
나는 진하고 고소한 풍미가 깊은 커피가 좋다.
커피라면 이것저것 마셔보는 편이지만
대부분 카페에서는 플랫화이트나 라테에 샷추가 때로는 샷추가 대신 우유 조금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그때의 라테가 여전히 최고로 맛있음으로 남아있다.
(라테여신 그녀는 이태원으로 옮겨 자신의 카페를 열어 운영하다가 몇 년전 문을 닫았다. )
요즘은 예전보다 커피를 좀 줄이고 있다.
모카포트로 내리면 너무 진해서 드립으로 내려 세잔 이상은 마시지 않으려 하고 있다.
내 몸에 상극이라 더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이란 질문에 커피라고 답했던 나다.
"진하고 쫀득한 라테 한 잔 마시고 입가심으로 고소하고 풍미 좋은 아메리카노.
완.벽.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덧붙임. 대략 찾은 외쿡커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