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을 공부하는 친구를 만났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약속을 잡았다. "잘 지냈어?" 친구는 한창 군악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입대한 지 꼬박 두 해가 지났으니 어느새 전역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냥 평소처럼 지내지." 사회로 복귀할 준비를 하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공모전부터 아주 장기적인 목표까지. 메고 온 백팩에서 수첩 하나를 쓰윽 꺼내더니 그간 적은 메모를 깨알같이 읽어 주었다. 그리고 부연하기를, 벌써 실행에 옮겼다고. 마찬가지로 남은 휴가 일정도 빠듯하게 짜여 있었다. 나는 설렘으로 가득 찬 친구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만한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내심 부러웠다.
"이거 오랜만이다." 스피커를 연결하자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친구가 발매한 첫 번째 음원이었다. 스무 살 무렵, 친구는 짝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발라드 악보를 그렸다. 애틋한 감정을 가사에 담았고, 꽤 큰돈을 들여 녹음과 믹싱을 마쳤다. 물론 그 결말을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나온 노래와 친구의 진심을 몹시 아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곡을 만들고 싶어?" 방 안을 채운 멜로디를 배경 삼아 물었다. "글쎄." 친구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했다. "사람들을 위로하는 곡을 만들고 싶어." 사람들을 위로하는 곡. 친구 특유의 맑은 분위기가 전해졌다.
밤이 깊어 가면서 대화도 무르익었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조금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네가 떠올리는 사람들은 누구야?" 약간의 의구심을 품고 입을 열었는데, 사실 그건 친구를 향하기보다 오히려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내가 간직한 뜻도 비슷했으므로. 글을 쓸 적이면 그 행간에 다양한 삶이 읽히길 바랐다. 하지만 막연한 다짐은 무색해지기 쉬웠고, 언제나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새겨야 했다. 기껏해야 나를 닮은 얼굴을 상대하는 게 전부라면 그게 어떻게 좋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너의 곡을 듣고 있는 한 사람을 상상해 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말없이 턱을 괸 친구를 대신해 나는 정적을 깨며 이어 갔다.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해?" 이윽고 스무고개 하듯 한바탕 질문을 쏟았다. "그 사람은 대학을 졸업했어?" "그 사람은 서울에 살아?" "그 사람이 거주하는 집은 어때?" "그 사람은 남자야, 여자야?" "그 사람의 연인은?" "그 사람은…" 그런 다음 나를 설명할 만한 단어들을 쭉 늘어놓았다. 남성, 비장애인, 청년 등등. 과연 그 범주 바깥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로부터 한 걸음만 떨어져도 좀처럼 그려 보지 못한 세계가 수두룩했다. 여성에 대해, 장애인에 대해, 아이와 노인에 대해.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같은 하늘 아래 살더라도 각자 다른 우주를 경험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속사정에 이르기란 선한 의지만으로 부족해 보였다.
"그러게." 친구는 얕게 탄식했다. 여태 헤아려 보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고민을 친구와 나누고 싶었다. 우리가 가진 그물코는 얼마나 촘촘할까. 행여나 작은 틈새로 놓치는 사람들은 없을까. 분명 '사람'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이야기되지 않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린 까닭은 무엇일까. 마땅한 자격을 잃었을까. 정해진 기준을 벗어났을까. 우리는 누구를 끌어안고 누구를 밀어내는 걸까. 어쩌면 타인을 위로하기를 원하는 예술은 차고 넘쳤다. 그런데 나의 경우, 그토록 흔해 빠진 위로가 모두 나를 비껴갈 때 훨씬 외롭게 느껴졌다. 철저히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친구는 종종 전화를 걸어 상담을 청했다. 우리는 저만치 가상의 인물을 세워 두고서 그 곁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수화기 너머로 머리를 맞대곤 했다. 나중에는 모임을 가져 같이 책이나 영화를 보았다. 혹은 아예 친구의 작업실에서 만나 창작의 과정을 함께했다. 곡의 얼개를 짜고 가사를 다듬다 보면, 둘의 생각은 금세 포개져 있었다. 그 순간의 보람을 기쁘게 맞이하면서도, 나는 늘 잊지 않고 유념했다. 유난히 짙게 칠해진 목소리 반대편에는 꼭 침묵처럼 누락되고 마는 존재가 있음을. 이미 환한 곳을 되풀이해 비출수록 어떤 자리는 더욱 어둡게 드리운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 친구와 나는 어렵게 연습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