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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굴굴 Dec 31. 2023

한 지붕 아래

그 집에서는 일 년 가까이 살았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남의 집에서 숙박하듯 어색했다면, 나중에는 그만큼 편한 공간이 또 있을는지 매일같이 귀가를 재촉했다. 내 식대로 꾸민 방에서 내 식대로 어지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지내다 보니 생기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애초에 한 집이었던 것을 반으로 쪼갠 탓에, 해가 질 무렵이면 옆집 노부부가 식사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왔다. 또한 환기가 원활하지 않아 여름철에는 습기를 머금은 공기로 실내가 찜통이었다. 때문에 부동산 앱을 뒤적인 적도 많았는데, 그렇다고 그 당시 내가 느낀 안락함이 거짓이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안락함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돌아보면 분명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원래 외할머니 혼자 살던 집이었다. 좁은 골목에 위치한 낡은 목조 주택으로 부엌과 방이 분리된 구조였다. 워낙 거동이 불편하던 외할머니는 그 동굴 같은 방안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종일 난방을 돌려 뜨끈하던 바닥 위에서 이불을 펼쳐 놓은 채 생활했다. 외할머니가 요양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그 집도 줄곧 빈 상태로 남았다. 아주 방을 빼자니 세간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다달이 월세만 치러야 했다. 그렇게 창고처럼 관리하기를 수년, 약간의 수리를 마치고서 때마침 독립을 희망하던 내가 새로 입주하게 되었다. 고치기 전까지는 빗물이 샜다고 하는데, 간혹 갈색 얼룩이 진 걸 발견하며 그 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나는 혹시나 싶어 사방의 벽지를 가만히 더듬곤 했다.


웬만한 살림살이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 혹은 본가에서 사용하던 걸 그대로 가져와 해결했다. 특별히 구매한 물건이 있다면 탈취제였다. 허공에 은근히 밴 외할머니의 체취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으므로. 어쩌다 한 번이라면 모를까, 그걸 아침저녁으로 맡는다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조금 창피했다. 집에 놀러 오겠다는 친구들에게도 매번 선수 쳐서 해명했다. 원래 할머니 혼자 살던 집이라고. 그 집의 성질이 나와 얼마나 무관한지 선을 긋기 급급해서 꼭 금방이라도 떠날 사람처럼 구는 데 익숙했다. 외출할 때마다 짙은 향을 뿌리고는 그게 온 집안에 스미기만을 기다렸다. 오래된 냄새가 나지 않을 만큼 뒤덮이고 나서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인테리어에 관해서도 비슷했다. 샛노란 장판은 일찍이 카펫으로 가렸다.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옷장은 아예 버렸고, 할머니가 쓰던 보행 보조기나 카세트 플레이어는 흰 천을 덮어 숨겼다. 개중 쓸 만한 가구만 골라 배치를 다시 했다. 어느새 나의 손길이 닿은 구석이 늘자 제법 흡족했지만, 한편으로는 영 꺼림칙하기도 했다. 목장갑을 끼고 비지땀을 흘리다 보면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다. 마치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만 같아서. 그러니까 예정된 장례를 먼저 치르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어언 구순이 다 된 외할머니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텐데, 나는 여기서 당신의 유품을 미리 간추리는 중인 걸까. 그런 의구심과 죄책감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와 같이 외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내가 면허를 취득한 뒤 최초로 서울 외곽을 달린 날이었다. 간만에 운전대를 놓은 어머니는 부쩍 수다스러웠는데, 화제는 자연스레 나의 생활로 이어졌다. 내가 그간의 생각을 풀어놓자 어머니는 어쩐지 격세감과 더불어 고마움을 전했다. 영원히 품 안에 머무를 줄 알았던 자식은 홀로서기에 한창이고, 마찬가지로 필연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외할머니의 부재가 못내 걱정이었나 보다. 그 두꺼운 흔적을 몰아서 정리하기란 힘겨울 테니 이렇게나마 느리게 비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러고 보면 지난날 외할아버지의 부고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어머니에게는 그게 여지껏 커다란 충격으로 관통했음을, 나는 그제서야 짐작했다.


한편, 어머니의 가르침은 한결같았다. 집에 들이는 게 있으면 그만큼 줄이는 것도 있어야 한다며, 어려서부터 내가 운동화 하나를 사더라도 반드시 다른 하나를 치우도록 시켰다. 어쩌면 인간사 역시 같은 원리일까.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기억과 애도 따위의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탈취제를 뿌리고 가구를 감추던 나는 망각을 보챘던 걸까. 아니면 반대로 그 전부를 마냥 끌어안고 간직해야 했던 걸까. 나의 존재를 더할수록 외할머니는 왜 자꾸 홀연히 사라지고 마는지. 가끔은 내가 차지한 대여섯 평의 단칸방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사계절을 보냈다. 동시에 다른 풍경들도 점차 눈에 들어왔다. 그 집에는 하늘로 난 창문이 있어 그 위로 밝은 빛이 내렸다. 가을에는 낙엽이 졌고, 겨울에는 눈이 쌓였다. 그리고 새벽녘 잠에서 깨면 하얗게 달이 떠 있었다. 나는 그걸 말똥히 올려다보며 비로소 어떤 연결을 실감했다. 언젠가 나와 같은 자리에 누웠을 외할머니는 그토록 고요한 가운데서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어느 명절, 외할머니는 자기 몸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당신의 발을 힘껏 주무르는 시범을 보였다. 우습지만, 그날 이후 나는 샤워를 하다가 버릇처럼 나의 발을 매만진다. 비좁은 집안 곳곳 동선을 따라 외할머니의 일과가 잔상처럼 서려 있었다. 한 지붕 아래 두 사람의 세월이 마구 뒤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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