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행복이 왜 거기서..?
이는 지인과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행복은 정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객에게 행복을 정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온 예시는 조금 아리송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100만 원을 벌고 내가 300만 원을 번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남이 100만 원 버는 게 무슨 상관인가요? 내가 100만 원을 벌고, 남들이 300만 원을 번다 해도 결국 내가 그 100만 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그는 조용히 가라앉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J님이라 그래요,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능은 남들과 비교를 합니다."
비교라.. 그의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나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나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발전시켜야 하는지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 비교의 목적이 중요하다. 나는 그저 그것을 나를 더 나아가게 할 나침반으로 삼는다. 즉, 다른 이의 성취나 상황은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정표일 뿐이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도 이와 비슷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행복이란 단순히 쟁취하거나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행복은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비롯되며, 특히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나 경쟁에서 벗어날 때 더욱 깊어진다고 강조했다. 러셀은 "남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는 우월감에서 오는 만족감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허상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하며,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렇다. 나는 비교에서 오는 행복은 우월성과 비슷한 맥락을 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남들과 나를 편가르며 우월성을 즐기진 않는다. 내가 '선한사람'같은 고상한 단어의 이유는 아니다. 단지, 나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이 백만원을 벌던, 1억을 벌던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아니지 않은가. 즉, 다른 사람들의 상황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그들의 상황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행복이 남과의 비교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비교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고 해도, 그 행복은 모래성과 같다고 생각한다. 높이 쌓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큰 파도가 덮쳐와 허물어지고, 다시 쌓아 올리기를 반복하는 것. 언제든 남과의 격차는 변할 수 있고, 그 차이가 행복의 기준이라면 우리의 마음은 늘 불안과 결핍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지표가 아니라 내 안에서 피어나는 만족감과 충만함에서 시작된다. 내가 가진 것으로 하루를 충실히 살고, 나의 속도와 방향을 지키는 것. 그것은 때로는 더디고, 때로는 외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만의 행복을 진정으로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