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능력은 적응이다. 어쩌면 이는 신의 축복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물과 달리, 우리는 환경을 바꾸기도 하지만 그보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데 더 능숙하다. 이 적응의 능력이 우리를 지구의 모든 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했고, 수천 년의 문명을 이어오게 했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선형적으로 흐르는 인생은 끊임없는 적응의 연속이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고, 낯선 관계 속에서 자리를 찾으며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여섯 살 때일까. 처음으로 유치원을 들어가는 날,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놓아야 했다. 엉엉 울며 엄마 어디가, 나도 같이 갈래를 외치지만, 결국 놓아야 했던 엄마의 손.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마 모두에게 첫 번째로 겪은 큰 적응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쭈뼛쭈볏 반에 들어섰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 반 아이들 중 한명이 다가와 "넌 이름이 뭐야?"하고 다가오면 그제서야 "어.. 아.. 난 J야"라고 우물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첫 친구가 생겼고, 우리는 새로운 관계와 환경에 한 발짝 적응해 나간 경험이 우리가 잊은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끊임없는 적응의 연속이다. 어릴 땐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게 적응하고, 성인이 되면 사회와 역할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킨다. 나이가 들수록 적응해야 할 범위는 점점 넓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과 상실, 도전과 극복을 반복한다.
스물일곱, 첫 직장에 들어간 날. 인터넷 강의에서 배운 것과 현실의 간극은 컸다. 선배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나는 그들의 템포를 따라가기 위해 애썼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업무를 익히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신입이 우왕좌왕하며 "이건 뭘까요?" "저건 뭘까요?"라고 묻자, 상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여긴 학교가 아니에요."
회사에서는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배우는 법을 터득해야 했고, 바쁜 상사에게 물어볼 때는 눈치를 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어쩌면 회사에서 가장 먼저 배운 건 눈칫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둘 관계와 업무에 적응해 나갔을 때, 그제서야 선배에게 "잘했네?"라는 짧은 한마디를 들을 뿐이다.
그 말 한마디가 주는 안도감은 크다. 스스로 내가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는 반증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일정한 역할을 요구한다. 학생, 직장인, 부모, 그리고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서서히 그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운다.
서른 살, 부모님 집을 떠나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가졌다. 세상 물정 모르고 계약한 투룸이다. 내 이름으로 계약한 첫 집이다. 아직도 월세를 감당하느라 등골이 빠지고 있는데, 그와중에도 스스로의 삶을 정돈하고,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과업이 있다.
그렇게 밤엔 침대에 누워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며 "진짜 어른이네.. "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집세를 내고, 전기세를 확인하고, 냉장고를 채우는 일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내 책임이 되었다. 누전이 일어났을 때 혼자 해결해야 했고, 심야에 아플 때도 스스로를 돌봐야 했다.
성장은 결국 독립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때로 외롭지만, 내면의 힘을 키우는 시간이다. 생활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고,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히면서 우리는 점점 단단해진다.
노력했음에도 실패를 맛본 순간은 누구나 있다. 빠르면 학생 시절에 시험과 평가를 통해, 우리는 실패의 쓴맛과 노력의 의미를 배워간다.
적응의 과정에서 실패는 필연적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한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를 말하진 않는다. 진부한 말이지만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고 장거리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이직의 실패를 예를 들 수 있겠는데, 이는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고, 내가 안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했다. 또, 면접장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간절함을 배웠고, 미뤄두었던 퍼스널 브랜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렇게 시작의 꼭지를 잡을 수 있었다. 실패는 때로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일 수도, 더 나은 방법을 찾으라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우리는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남은 큰 적응의 과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상실'일 것이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적응은 상실과 변화일 것이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배우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퇴직을 하며 소득이 줄었을 때, 우리는 무너질 듯한 아픔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적응이란, 상실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인생은 적응의 연속이다.
학교, 직장, 독립, 실패, 그리고 상실.
적응은 단지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자신의 내면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적응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게 수용하며, 더 강하게 성장한다. 결국, 적응이란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되, 그 과정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변화 속에서도 나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평생에 걸쳐 배우는 삶의 기술이다.
변화는 끊임없이 찾아온다. 우리가 준비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삶은 계속해서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그러나 적응의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유치원에서 눈물을 흘리던 아이가 어느새 서른이 되어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고, 직장에서 눈치를 보던 신입사원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 그 모든 과정이 적응이며, 그 모든 적응이 우리를 한 단계 성장시킨다.
어쩌면 삶의 가장 큰 성취는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응하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삶의 기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