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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것이 좋다

by 세비지

새로운 것, 신기능은 늘 흥미롭고 편리하다. 문고리만 봐도 그렇다. 예전엔 열쇠를 챙겨야 했지만, 도어락 덕분에 그런 불편함은 사라졌다. 연락 수단도 편지에서 삐삐, 그리고 핸드폰으로… 시공간의 거리마저 지워졌다.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더 간편해지고, 더 효율적이 되어간다.


그런데도 나는 늘 오래된 것이 좋다.

예를들면,.. 그렇다. 오래 입은 잠옷 같은 것 말이다.

고무줄은 늘어져 제 기능을 못 하고, 입으면 줄줄 흘러내린다. 가랑이는 해져서 구멍이 나기 직전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미 수명을 다한 옷이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그 잠옷을 찾는다. 새로 산 잠옷이 서랍에 그대로 있는데도 말이다.


불편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더 편하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 이 천의 감촉을, 이 무게를, 이 온도를. 처음 입었던 날의 뻣뻣함은 사라지고, 수십 번의 세탁을 거쳐 부드러워진 그 촉감이 피부에 안착한다.


의자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래 앉아서 이제는 내 몸의 자국이 남아 있다. 허리가 닿는 부분, 팔꿈치가 머무르는 자리, 엉덩이가 만든 오목한 곡선. 가죽은 벗겨져 보기 흉해졌지만, 여전히 나는 그 의자를 좋아한다.

그 의자에 앉아 나는 사색을 하기도하고, 책을 보기도하며, 잠깐 졸기도 했다.


가끔 새 의자를 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이 의자는 나를 안다'고. 내가 피곤할 때 어떤 각도로 기대야 편한지, 집중할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이 의자는 다 안다. 그 앎이 주는 편안함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보다 익숙한 사람이 좋은 것도 같은 이유다.

어느새 서로의 모양에 맞춰진, 그 울퉁불퉁함이 좋다. 처음 만났을 때의 조심스러움은 사라지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편안함이 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설렘도 좋지만, 오래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에는 다른 종류의 따뜻함이 있다.


생각해보니 오래된 것들에는 시간의 흔적이 스며있다.

흔적이 바로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의 증거다. 새것의 완벽함은 아름답지만, 낡은 것의 불완전함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우리를 위로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그래서 새로운 것들, 편리한 것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해도, 나는 여전히 오래된 것이 좋다. 약간의 불편함이 나는 좋다.


새로운 것은 편리하지만 오래된 것은 편안하다. 익숙한 것, 이미 내 안에 스며든 것, 나와 함께 늙어가는 것들. 그것들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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