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간디학교 이병곤 교장 선생님을 만나다
충북 제천 덕산마을의 제천간디학교는 대안교육의 가치를 실현해 가는 비인가대안학교이다. 간디학교는 덕산마을에서 새로운 교육문화를 만들며, 지속가능한 농촌마을의 조건을 만들어 가기 위해 마을과의 연대와 협력을 고민하고 있다. 제천간디학교 이병곤 교장 선생님께 대안교육과 덕산마을에서의 제천간디학교 이야기를 들어본다.
“너 좋아하는 게 뭐니?”를 묻기 시작하다
대안학교는 1888년 영국 중북부 지방에 있는 에버츠호움(Abbotsholme)이라는 학교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때라 읽고 쓰고 말하고 셈하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춘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기본적인 능력, 즉 초등교육을 받은 노동자를 키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근대학교체제인데, 그곳은 마치 공장처럼 굴러갔습니다. 교사 한 명당 200명의 학생이 배정되고, 엄격한 훈육과 수직적인 사제관계로 암기식‧반복식 수업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교육실험그룹들이 도시가 아닌 시골에 작은 학교를 열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기숙형 학교를 열어 아이들이 하고픈 것을 하게 해주는 교육을 했고, 교육내용엔 수공, 철공, 목공 등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계획-제작-결과물-결과물에 대한 처리’ 까지 자기 책임하에 움직여보는 교육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게 대안교육의 핵심 내용입니다. 기계화에 반대하는 인간중심주의,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기다려주는 체제를 갖춘 곳이자 ‘너 좋아하는 게 뭐니?’를 묻는 개별화 수업을 시작한 게 대안학교였습니다.
대안교육의 값진 의미는 심성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교육이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심성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심성을 사람의 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자제하는 마음, 상대방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공정하게 무언가를 처리하려는 마음 이런 것들이 바로 심성입니다. 그런데 근대교육 이후에는 교육의 결과물에도 ‘00력’이라는 이름을 붙여, 품질관리 하듯이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심성은 즉각적으로 발달하지 않고 오랜 과정을 통해 숙성되는 인간의 특성이기에, 교육의 초점으로 잡아 발달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안교육에 값진 측면이 있다면 바로 심성능력개발을 위한 지성과 생활능력교육을 같이 병행하는 것입니다.
간디학교, 스스로 성장해 가는 배움을 만들어 가다
간디학교는 1997년 설립자이신 양희규 선생님이 미래세대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산청에 처음 학교를 세우셨어요. 간디의 ‘비폭력 저항주의, 자립갱생, 마을공동체 운동’이라는 세 지향점을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산청에서 처음 시작해, 2002년에 중학교만 제천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에는 대안고등학교가 많지 않아서 제천간디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대안고등학교 신설을 요구해 2005년부터 고등과정을 운영했고, 제천간디학교는 중고통합 6년제 비인가 대안학교가 되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노작교육을 중요시 여겨 도예 작업장, 생활기술 작업장, 농사 작업장 등 작업장교육을 하고, 시간표엔 생활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학급텃밭 가꾸기, 읽기 쓰기 말하기와 관련된 활동, 학급체험학습, 자연체험, 학급회의가 있습니다. 시간표엔 학급활동을 하는 4시간만 고정되어있고, 나머지 빈 시간대에는 대학생들이 학기마다 수강신청 하듯이 학생들도 자기 시간표를 스스로 구성합니다. 필수교과로 6년 중 한 학기만 들으면 되는 성평등교육과 간디철학•문화철학이 지정되어 있고, 나머지는 다 선택교과입니다. 매학기 열리는 약 40여종류의 교과들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하여 수강신청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수업을 하나도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있어서, 어떤 아이들 시간표는 거의 텅 비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너희들이 해볼 수 있는 교과를 개설해서 직접 진행해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학교의 규칙을 새로 정하는 논의가 이뤄질 때 회의시간만으로는 규칙논의가 부족해 6주짜리 단기 수업을 개설하기도 합니다. 3년 전에는 학생회가 학교의 새로운 먹을거리 사용 규칙을 만드는 ‘이사가기 프로젝트’ 수업을 개설해 8명의 아이들이 그 수업을 신청했고, 학교 차원에서 다른 수업과 똑같이 학점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학급은 1~4학년(중1~고1)까지 섞여 한 반에 10명 정도로 구성된 통합반 체제로 운영중입니다. 5, 6학년(고2, 고3)이 되면 다시 학년반으로 돌아가서 졸업과 진로에 필요한 프로젝트를 따로 수행합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전교생 100명 정도가 다 모이는 가족회의(전교생회의)가 열립니다. 중요한 안건사항들이 있으면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기 어려워하는 저학년을 배려해10명 단위의 친숙한 분위기에서 학급별 사전회의를 합니다.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회의하는 학습의 장입니다.
요즘 제천간디학교 아이들은 ‘페미니즘’과 ‘동물권’ ‘채식주의’에 관한 관심이 많고 최근 2년 사이에인턴십 현장을 나갈 때에도 돌고래 구조 및 해양생태계 보존에 힘쓰는 ‘핫핑크돌핀스’와 같은 동물보호 단체로 많이 나갑니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다
제천간디학교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학교를 오가며 덕산마을에서 소비를 하기에, 제천간디학교의 존재는 마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전문성을 가진 청년과 장년그룹 교사 25명이 덕산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이곳에 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덕산초중학교에 다닙니다. 제천간디학교가 위치한 덕산면의 이 공립학교는 인근 면 단위 소재 학교 가운데 가장 학생 수가 많습니다. 학교가 마을에 와서 지역사회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학교가 마을에 먼저 손을 내미는 노력을 계속하려한다
제천간디학교는 설립 당시부터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를 표방했지만, 사실상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지는 못하고 부분적으로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는 덕산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후 학습 동아리 지원이나, 귀농귀촌 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마실 공동체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정도로 마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가을이면 마실 공동체에서 준비하는 덕산면 ‘수수축제’가 열립니다. 모름지기 축제란 여러 부스들이 열려 왁자지껄해야하고, 체험이나 먹거리 부스가 있어야 하고, 재미있는 볼거리와 공연이 열려야 합니다. 수수축제에서는 전체 부스의 절반정도를 우리 학교 아이들이 준비하고, 공연의 절반 이상에 학교 아이들이 참여합니다. 덕산면의 ‘수수축제’에서 제천간디학교가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과의 교류가 적습니다. 앞으로는 교육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앞으로 꾸려낼 삶에서 더 밀접하게 마을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을과 학교가 함께한다는 것은 사람이 교류하는 겁니다. 마을과 학교의 인적교류가 활성화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을교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올해부터 전 교사대표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 한 분을 마을로 파견해서 마을과의 교류사업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노력으로 정부 기금사업에 선정된 상태인데요, 마실 공동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거기에 마을 작업장을 세울 겁니다. 현재는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비누공장’ 작업장이 학교 안에 있는데, 앞으로 이 작업장을 새로 마련되는 마을작업장 공간으로 이전하여 아이들 뿐 아니라 마을분들 대상으로 강의도 해 보려고 합니다. 주식회사도 설립해서 아이들이 제작한 상품으로 온라인 통신판매도 직접 해 볼 수 있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신뢰를 주고, 마을분들과 깊이 교류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여러 가지 생산적인 사업을 통해 학교가 먼저 마을에 손을 내밀고 다가가기 위한 사업들을 계속 해나가려 합니다.
제도권 밖 학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제천간디학교는 제천시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조례’를 통과시킨 4년 전부터 점심 급식비 한 끼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외엔 교육청 공모사업을 통해 재정적 도움을 받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정부지원은 없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과정운영을 비롯해서 새로운 혁신교육에 대한 아이디어와 실험들을 계속 지속해야 하는데, 정보와 교사교육이라는 두 측면에서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습니다. 대안학교는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에, 교사들이 아이들의 동기 부여나 안전한 심리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쏟는 시간이 많습니다.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교사들이 소진되기 쉬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대안학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습니다. 1998년에 경남교육청이 산청간디고등학교를 학력이 인정되는 대안특성화학교로 지정했었고, 2005년 무렵에는 초중등교육법에 60조 3항을 새로 만들어 ‘각종학교’로서의 대안학교 인가를 열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각종학교 설립기준에 있는 교사자격 요건, 학교 건물 및 체육장시설에 대한 기준, 학생 1인당 필요면적 기준 등이 그 당시 비인가 대안학교 현실과 너무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인가 신청을 하는 현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안학교의 기본 정신은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서의 자율성과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교사, 그리고 전문성 보장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것을 교사 자격증 유무 등으로 제한하게 되면 있던 선생님들을 다 내보내고 새로운 선생님들을 모셔야 하는데, 대안교육의 마인드가 없는 선생님으로 대안학교를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대안학교, 건강한 의식을 가진 시민을 키우다
우리는 제도권 밖의 대안학교지만 우리가 추구하려는 교육의 목적과 지향은 공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원래 국가가 시행했어야 하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시민을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국가가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이 사업의 공공성을 인정해 주고, 공적자금을 안정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시가 지난 2-3년간 해온 ‘서울형 대안교육기관’ 전환사업이 그렇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에 있는 비인가 대안학교가 최소한의 기본 요건을 충족하면 ‘서울형 대안학교’로 지정합니다. 심사를 통해 지정된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교사 3명의 인건비와 연간 프로그램 지원비 800만원, 공간 대여료의 80%, 점심급식비 1끼의 등의 지원이 이뤄집니다. 물론 심사평가와 지원금에 대한 사후 감사도 진행됩니다.
요즘 교육부가 생산하고 있는 미래교육에 대한 문서들을 보면 거의 80-90%는 ‘테크놀로지가 실현되는 스마트교실 구축’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것은 빌딩을 짓는 사업자들과 테크놀로지 관련된 종사자들이나 회사들을 기쁘게 할지언정, 거기에 인간의 성장에 대한 배려와 앞으로 더욱더 소중하게 될 인간적 측면들이 간과되어 있습니다. 교육부는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한해에 25조에서 30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스마트교실을 만드는데 쏟아부으려 합니다. 저는 그 중에 10분의 1이라도 교육과정을 인간주의적으로 바꾸는 일에, ‘경쟁’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일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갈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지켜보다
청소년기엔 아이가 잘하는 부분, 관심 있어하는 분야, 성장하고자 하는 지향성들이 조금씩 생겨나는데 그것들을 잘 조정해주고 지원해 주는 세력이 부모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은 쉬운데 이행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요구입니다. 중고등학생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누구보다도 자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시기엔 자녀가 어떤 존재인지 낯설어질 겁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데,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오랫동안 자녀를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녀와의 관계에서 불상사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적어도 아이가 중학교 단계에 접어들면 ‘애정어린 무관심’으로 지켜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항상 문제는 지나친 개입으로 생깁니다. 칼융이라는 심리학자가 말하길 인간에겐 마법사, 현실주의자, 도피주의자 등 여섯 개의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여러분이 알고 있는 자녀의 캐릭터는 한 개 내지 두 개밖에 없을 겁니다. 여러가지 자아가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다른 곳에서는 다른 자아가 발현됩니다. 이와 같은 다양성, 인간의 본성상의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이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첫 번째 열쇠인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가 일반 공교육 학교보다 조금 더 나은 면이 있다면 아이들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인정해주고,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주며, 함께 지켜보는 곳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엔 아이들의 능력을 키워주는 곳은 부지기수로 넘쳐나지만 아이의 심성을 키워주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심성을 키워주는 곳이 어딘지 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