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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을 품은 집

<조용히 걷는 생각들> (10)

by 이호준

이삿짐은 창고에 맡겨두고 새로 이사할 집을 고치고 있다. 공사는 한 달쯤 걸릴 것 같다. 지은 지 60년 가까이 된 낡은 주택이다. 처음 이 집을 계약했을 때 나 스스로도 놀랐다. 거의 충동적이었다. 왜 하필 이 집이었을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이 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 안방 창문 너머로 한눈에 들어오는 북악산의 능선, 그 단정하고 유려한 선을 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아침마다 북악산을 바라보며 따뜻한 햇살 속에서 눈을 뜨는 삶,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도 조금 더 넓히기로 했다.


공사가 시작되자 현실이 드러났다. 뜯으면 뜯을수록 문제는 끝이 없었다. 벽 안의 낡은 배선, 삭은 배관, 뒤틀린 바닥까지.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모양이다. 그래도 실망보다는 설렘이 앞선다. 집이란 결국 손을 대는 만큼 정이 스며드는 법이니까. 예상보다 비용이 더 들겠지만 그만큼 애착도 깊어지고 있다. 다행히 성실한 시공업자를 만나 매일 꼼꼼히 상의하며 조금씩 집의 형태를 되살려가고 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한 달쯤 뒤면 공사가 끝나고 나는 다시 짐을 들이며 파랗게 칠한 철대문을 열게 될 것이다. 세월의 온기가 머문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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