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걷는 생각들> (14)
퇴직한 지 어느덧 1년이 가까워온다. 처음에는 넉넉한 시간이 반가웠지만 그 여유는 금세 다른 부담으로 바뀌었다. 일정은 들쭉날쭉해졌고 생활은 느슨해졌다.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지만 마음은 괜히 바빴고 하루는 쉽게 흐트러졌다. 경제활동에 대한 불안도 은근히 마음을 짓눌렀다.
돌이켜보면 퇴직 후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흔들린 일상이었다. 이를 붙잡아주는 것은 돈도 계획도 아니었다. 결국 규칙적인 생활이 가장 중요했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 관리의 의미가 더 커지는 만큼 루틴의 필요성도 분명해졌다.
루틴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나와 맺는 약속이다. 나를 일정한 흐름 속에 얹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장치다. 마음이 흔들릴 때 그 반복이 삶의 중심을 세워준다. 내가 지키는 루틴은 아침 걷기와 근육 운동이다.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몸을 깨우는 시간은 마음부터 밝아지게 한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 컨디션이 자연스레 살아난다. 이어지는 커피 한 잔은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 된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예기치 못한 일상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루틴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하루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규칙적인 운동은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버팀목이며 앞으로의 삶을 이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이다. 변화가 많은 삶 속에서도 이 작은 리듬 하나는 꼭 지키고자 한다. 하루를 지키는 힘은 결국 온전한 나를 지키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사진: 나주 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