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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지만 평온했던 한 달

<조용히 걷는 생각들> (18)

by 이호준

집수리를 시작하면서 잠시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운동과 사진 그리고 글쓰기라는 일상의 리듬을 지킬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경복궁역 바로 옆의 작은 숙소를 구했다. 3평 남짓한 방에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좁은 침상과 작은 탁자 그리고 독립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캐리어 하나를 더 놓기도 벅찬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기능은 갖추고 있었다. 때로는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했으나 소음이 적고 빛이 잘 차단되어 숙면을 취하기에는 충분했다. 겉모습은 초라해 보였을지 몰라도 막상 살아보니 불편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이곳에 머물며 삶의 형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학생이나 관광객 사이에서 이런 공간이 인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직접 살아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공간의 크기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결국 그 안에서 지내다 보니 몸이 먼저 상황에 적응하고 마음이 그 뒤를 따라 정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사는 밖에서 해결했고 아침은 종로도서관 카페나 근처 빵집에서 가볍게 시작했다. 단조로운 리듬 속에서 하루는 평온하게 흘러갔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더 자주 갖는 뜻밖의 이점도 누렸다.

다음 주면 계약이 끝나 수리된 집으로 돌아간다. 지난 한 달을 낭만적으로 포장할 생각은 없지만 쉽게 잊히지 않을 귀한 경험임은 분명하다.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조건과 상황에 맞춰 자기만의 하루를 이어간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이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나 역시 이 좁은 방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챙겨 들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 사진: 고창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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