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걷는 생각들> (19)
지난 4월 후배가 보낸 SNS 톡 한 줄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오래된 주택이 매물로 나왔는데 한번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주택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었던 탓일까. 집을 둘러보다가 무엇에 홀린 듯 곧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했지만 결국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맺어진 이 낡은 집과의 인연은 어느새 내 삶 한가운데를 차지한 인생 프로젝트가 되었다.
기존 집 정리가 늦어지면서 잔금과 집수리비를 마련하는 일이 첫 번째 난관으로 다가왔다. 결국 지금 집은 전세로 내놓았고 수리비는 적금과 퇴직수당을 털어 맞추기로 했다. 시공업자를 선정하는 일도 큰 고민이었다. 주변에서 들은 공사 관련 무용담이 너무 많아 공사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거나 일정 문제로 다투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동생 소개로 좋은 시공업자를 만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공사가 시작되자 공사비는 처음 견적보다 꽤 많이 늘어났다. 오래된 집은 뜯을수록 손댈 곳이 끝없이 튀어나온다. 도배지를 벗기면 낡은 벽체와 삭은 배관이, 바닥을 들추면 부서지는 시멘트가 드러나 집의 실제 구조가 처음 보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럴 때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한숨이 나왔지만 답은 결국 현장에서 찾아야 했다. 시공업자의 설명과 판단을 차분히 들으며 하나씩 결정해 나갔다. 변수가 생길 때마다 숨기지 않고 상황을 알려주고 함께 방법을 찾다 보니 증액된 공사비도 자연스레 수긍하게 되었고 불필요한 신경전은 한 번도 없었다. 전기와 배관, 도배와 장판 같은 기초 작업이 마무리되고 새 창문과 현관문이 새롭게 설치되자 비로소 집이 집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조만간 입주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벽 페인트 리터치와 구석구석 미장 보강, 배수구 정비와 빗물 흐름 조정 같은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여전히 마무리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끝이 보일수록 손대고 싶은 곳은 더 많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가는 중이다. 이제부터는 내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살아가면서 천천히 고치고 조금씩 멋을 더할 것이다. 이미 사다리와 톱 같은 자잘한 장비들을 들여놓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내 손때를 묻혀 나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갈 생각이다.
이번 공사를 돌아보면 힘들었던 기억보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무엇보다 시공업자와의 호흡이 좋았다. 예민해지기 쉬운 순간에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상대를 탓하는 일 없이 끝까지 평온한 분위기로 공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향후 진행할 2차 리모델링 공사도 지금 사장님께 맡기려고 한다.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공사대금을 모두 정산하는 그 순간까지 이 흐름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우여곡절 끝에 나에게로 온 이 집과 그 과정에서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 후배와 동네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 집에서 맞이할 시간들을 천천히 채워 나가며 새로운 인생 프로젝트의 다음 페이지를 펼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