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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프롬프트

<SW중심사회> 2025.10

by 이호준

문득 단어 하나가 떠오르는 순간 글쓰기가 시작된다. 무엇을 쓸지 머뭇거리거나 쓰다 멈추게 되는 것은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일 때가 많다. 머릿속에는 다양한 장면과 감정, 문장과 생각이 떠다닌다. 그럴 때 마음속에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단어를 붙잡는 게 중요하다. 왜 이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까. 왜 이 단어 앞에서 나는 멈추는 걸까. 그 질문이 방향이 되고 첫 문장을 연다. 나는 이걸 글쓰기의 ‘프롬프트(prompt)’라 부른다. 프롬프트는 단순한 시작 문장이 아니다.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고의 진입점이다. 방향을 잡고 쓸 이유를 묻고 글의 중심을 세운다. 좋은 프롬프트는 살아 있는 재료를 발견하고, 그 안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며, 쓸 것을 가려내는 선택으로 완성된다. 오래 품은 생각이든 순간적으로 스친 통찰이든 책 한 구절의 여운이든 내 안에서 계속 말을 걸어온다면 그건 이미 글이 되려는 무언가다. 그 재료를 끌어내는 건 묻고 또 묻는 일이다. 왜 지금 이 장면이 떠올랐을까. 질문이 있어야 글이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도 글쓰기의 일부다.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모두 쓸 수는 없다. 문장은 덜어낼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 이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단서를 붙잡고 질문을 만들고 선택하는 일이다. 이 셋이 맞아떨어질 때 문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어떤 기억은 쓰고 어떤 감정은 흘려보낸다. 그 과정의 끝에서 비로소 글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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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라 카페 박노해 갤러리, 인천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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