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묻다
나는 나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매번 선거에서 보수당을 찍는 정도는 아니지만, 기본 컨셉은 보수에 가깝다고 본다.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집 한 채 가진 것도 없지만, 내 가족, 내 직장, 내 자산이 변동되거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싫기 때문이다. 훗날이라도, 나는 촛불시위에 참여할 것인가
이 글을 읽으면서 진보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들이 왜 촛불시위를 하며, 집회에 참석하고, 남의 고통을 내 일처럼 참지 못하고 함께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유시민 작가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했다. 비용이 들고 고생이 되는데도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당당해지기 때문이라고... 난 사실 유시민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보주의의 정의를 이와 같이 내린 것을 보고 나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진보와 보수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와 아내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혼초부터 20년이 지나있지만 여전히 이 간격을 좁히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 정치, 문화, 경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 난민 수용의 문제,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 정책,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환경문제... 아내와 나는 꽤 여러 분야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심도 있게 이야기하는 편이나, 결국 상대를 비난하고 버럭 버럭 화만 내다가 끝나버린 적이 많다. 더군다나 아내는 나의 이런 편협한 생각이 아이들한테도 전가되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는 비난을 나에게 몇 번 했다.
나는 억울한 감정이 든다. 외벌이 가장으로서 얼마 있지도 않은 '내 것'을 지키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아내는 대인배처럼 항상 남을 먼저, 국가와 지구를 먼저 걱정하는데서 오는 근본적인 괴리감이다. 나는 전쟁터에서 죽어라고 싸우고 있는데 내 동지가 내 편을 안 들어주고, 상대편을 거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갑갑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의 의견에 더욱 반대를 한 적도 많다.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진보주의 행위들은 개인의 신념으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데, 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세월호 사건, 계엄사건 등 나도 마음은 불편했지만 내 생활을 방해하면서까지 무엇인가를 하고 싶진 않았다. 오늘 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내일 직장에서 내 몫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올해 말 국내로 복귀하면, 매주 한 번씩이라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보겠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노인 목욕봉사 활동 등 몸을 써서 하는 것을 도전해보고 싶지만, 내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장애인시설 식사 준비나, 설거지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예전에 해봤던 야학 강사일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찌 되었던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유시민 작가는 잘 살기 위해서 일, 사랑, 재미, 연대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거기다가 돈과 건강이 덧붙는다면 최고의 인생이 되겠지.
삶은 곧 죽음이다.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