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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샤뜨 Aug 13. 2024

영어학원아, 잘 있어...

7살 여름부터 꼬박 2년을 다녔다. 셔틀은 커녕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는 퇴근길 지옥철에 꼬이꼬이 몸을 구겨넣어야했다. 그마저도 한 번에 타면 다행이었고 언제나 3대 정도가 지나간 후에야 몸을 구겨넣을 수 있었다. 나는 늘 우리딸이 아기라서 안 보일까봐 사람들 보란듯이 문 앞에 바로 세워놓고 내 양 팔에 온 힘을 집중해 사람들의 압력으로부터 딸을 보호해야했다. 환승역이 지나고 지하철 바닥이 보일 정도가 되면 우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2년을 다녔다. 


대학 졸업 후 나의 첫 직장은 대학원 행정직이었다. 그래도 인서울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계약직이었다. 그런데, 그 곳은 모두가 영어를 다 너무 잘했다. 나만 빼고. 국제대학원이었기 때문에 외국학생들을 상대해야했고, 당연히 교수들도 '헉'하는 유학파 출신이었다. 안 그래도 계약직이었는데 나의 자존심은 바닥을 쳤고,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일반사설학원은 아닌 조금은 특이한 곳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4년을 공부했다. 


처음 나의 단계는 기초2반이었다. 총 13단계 중 2단계, May I help you?만 말할 줄 아는. 그렇게 나의 영어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일주일에 4일, 퇴근후의 학원이 내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나는 예복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적극성으로 주저없이 말을 던지며 회화가 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시제도 쓰고 부사들도 주렁주렁 매달아가면서 제법 그럴듯한 영어를 하게 되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정규직으로 이직하게 되었고 영어가 80%인 국제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매일 출장만 다녔다. 시드니로의 첫 출장이 정해지던 날,  야근하던 사무실에서 몰래 나와 문을 닫고 엄마에게 속삭이듯 드디어 나도 해외출장을 간다며 기뻐 전화를 했었다. 그 뒤로 맨날 갔다. 비행기마일리지도 엄청 쌓았다. 그리고 출장이 너무 많아서 퇴사했다. 


결혼계획이 있어 여유스러운 직장으로 옮겼고 예쁜 딸을 낳았다. 나는 그 학원을 다니며 늘 결심했다. 내애기는 무조건 여기에서 공부시킨다고. 그리고 나의 뜻대로 그 곳을 2년을 다녔다. 우리딸도. 


다른 친구들이 숙제에 허덕일 때 우리딸은 숙제도 없이 늘 즐겁게 다녔다. 학원에서 얼핏 보면 맨날 신나게 방방 뛰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고. 무얼 하는지 나는 다 알았기 때문에 우리딸이 책 한권 펼쳐보지 않아도 절대 걱정하거나 공부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원을 믿었으니까. 


바보였고 참 어리석었다. 학원 덕 좀 보려던 나의 꿈은 처참히 깨졌다. 


2년을 지하철에 몸을 꾸겨넣어다니는 동안 우리딸은 지하철 박사가 되었다. 노선을 제법 외우게 됐고 어느 칸에 타면 어디에 내려 연결이 빠른지 등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서 빠삭해졌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우리딸에게 학원은 스트레스 하나 없는 너무도 재밌는 곳이었지만 실력은 늘지 않았다. 


나는 나름의 교육관이 있었다. 들여다보면 절대 학원의 상술에 넘어가지 않고 내딸에게 집중하는 엄마가 되는 는 것이었는데 이번 학기의 피드백을 받은 나는 학원의 다음 레벨을 보완해줄 또 다른 학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머하는거지? 이제 겨우 초2짜리를, 영어가 뭐가 어렵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난리를 치는거지?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다음학기를 취소한다고 했다. 


딸에게 학원을 더이상 다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니 정이 들었는지 서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하철을 안 타도 되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책꽂이에 꽂혀있던 파닉스책을 꺼내 ABC를 가르쳤다. 


6살 정도에 처음 할 때는 참 난감했는데 그새 자랐는지 제법 속도가 났다. 딸도 엄마와 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래도 파닉스 정도는 가르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결국, 모든 것은 엄마의 책임으로 되돌아 올 것을 알면서도 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공부는 본인이 하는 것이지만 그 길을 만들어주는 것은 엄마의 몫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학원에 의지했다. 명품가방을 들면 명품을 나라고 착각하듯 그 학원을 다니면 우리딸이 그만큼의 영어를 한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 같다. 


5년 다닌 피아노, 바이올린 학원을 끊을 때도, 이번에 영어학원을 끊으면서도 이제 다시는 학원에 의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내새끼를 책임지는 것은 엄마이지 학원 원장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와 내자식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수없이 많은 길을 함께 가보았을 때만이 최선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해도 괜찮은, 이제 겨우 아홉살인생이라는 것도. 


OO학원아- 그동안 너무 즐거웠어! 이제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할께!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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